[박병원 객원 대기자 특별리포트] "대선주자들, 농업서 미래 찾을 생각 왜 안하나"

입력 2017-03-07 18:20
수정 2017-03-08 06:59
'제조업 외바퀴 경제' 한계 도달…보호막에 갇힌 농업 개혁 절실

FTA 맺을 때마다 농산물 개방 최소화 급급 '글로벌 식탁' 공략할 절호의 기회 놓쳤다

농업에 대한 낡은 인식 버리자
식량안보? - 세계 곡물 생산량 급증…식량 넘쳐나
쌀시장 지켰다? - 소비 급감…재고관리에만 연 6000억

농업의 환골탈태 없인 미래 암담
보호·지원에 안주하는 쌀산업, 죽는 길로 가고 있어
시장 개방·고급화…제조업 '성공 DNA' 이식해야

글로벌 농기업 유치해 경쟁력 키우면 '윈윈'
중국은 농산물 블랙홀…과일 등 프리미엄 시장 잡아야


[ 박병원 기자 ] 대선주자들이 앞다퉈 경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농업에 대한 비전 제시는 없다. 농업에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총체적인 공급 과잉과 과당 경쟁에 시달리는 제조업은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보루가 아니다. 제조업 외바퀴의 경제 운용은 한계에 도달했다. 해법은 농업과 서비스업을 제조업만큼 강한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농업과 서비스업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는커녕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경제 운용에 짐만 되고 있다.

농업이 경제에 짐만 된 것은 잘못된 정책 탓이다. 달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쌀을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는 것을 농업에 임무로 부여한 게 우리 정부였다. 생산성, 경쟁력 같은 것은 따지지도 않고 수입을 막아주고, 보조금을 주고, 수매가를 높여 농가소득을 보전해줬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경쟁력 없는 농업을 자초했다. ‘식량안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농업도 경쟁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농정 개혁의 첫걸음이다.

또 하나 중요한 여건 변화는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농산물 수입국이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산 농산물을 들여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패배주의에서 탈피해 거대한 중국 시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 유럽 전역을 시장으로 삼아 작은 경작면적으로도 세계 2위 농식품 수출국이 된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우리가 제조업을 세계 최강 반열에 올려세운 그 전략, 전술, 정책을 그대로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그 핵심은 수출 지향, 과감한 개방을 통한 경쟁 도입,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고급화를 통한 품질·가격 경쟁력 강화 등이다. 제조업이 이룩한 것을 농업이나 서비스업이 못 이룰 이유가 없다.

이는 농민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지금 우리 농민이 하고 있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농사(農事)지 농업(農業)이 아니다. 영농 규모 확대, 과감한 시설투자와 기술 개발, 해외시장 개척 등을 위해선 기업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제조업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외국 기업의 힘도 빌렸는데 국내 기업의 힘을 활용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시간이 없다.

농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970년 24.9%에서 2015년 1.9%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농업과 농민을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식량안보나 농업의 다원적 기능 같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다. 지금 총체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경제가 직면한 가장 절실한 과제가 내수진작인데 이는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과 결혼·출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식량과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 경제의 영원한 숙제인 ‘외화 확보’도 지금까지처럼 제조업 제품 수출만으로는 해결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 두 가지가 농업도 이제는 국제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탈바꿈해서 수출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다. 농업의 환골탈태 없이는 우리 경제의 미래가 암담하다.

농업을 살리려면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은 물론이고 우리 국민 모두가 몇 가지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첫 번째 오해는 식량안보다. 즉 식량이 부족하므로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고라도 최대한 자급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식량이 부족하다는 증거는 없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서 1970년과 2010년을 비교해 보면 세계 쌀 생산량은 연간 2억1280만에서 4억9310만으로 132% 늘었다. 밀과 옥수수도 각각 112%와 216% 증가했다.


'식량안보'라는 오래된 신화

경작면적이 늘기도 했겠지만 더 많은 부분은 생산성 향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쌀의 ㏊당 평균 수확량은 1961년 1869㎏에서 2014년에는 4539㎏으로 늘었고, 옥수수는 1942㎏에서 5664㎏으로 증가했다. 식량이 부족하다면 앞다퉈 수출을 규제해야 할 터인데 통상압력까지 넣어가면서 자기 나라 곡물을 더 사라고 하는 것은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는 증거 아닐까?

한국은 식량작물 재배에 불리한 여건이다. 쌀은 아열대 작물이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생육기간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모내기라는 대단히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을 거쳐도 겨우 1모작밖에 못하는데 원산지에서는 예사로 2, 3모작을 할 수 있다. 밀과 보리는 냉대작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굳이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싶으면 해외로 나가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을 일이지 우리나라에서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두 번째 착각은 보호와 지원으로 농업을 지탱하려고 하는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는 모두 상호 경쟁하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농산물이 경쟁에 노출돼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 나라다. 그런데도 우리는 쌀만은 수입하지 않아야 하고 그렇게 해서 쌀산업과 쌀 시장을 지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쌀산업, 쌀 시장이 지켜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70년 136.4㎏에서 2015년에는 62.9㎏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정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쌀 개방을 막아왔다. 수입만 막은 것이 아니다. 쌀은 ㏊당 100만원의 고정직불금과 목표가격인 80㎏ 한 가마당 18만8000원에 미달하는 금액의 85%를 보전해 주는 변동직불금까지 주는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소비는 주는데 생산은 줄지 않으니 공급과잉이 심화돼 시중 쌀 도매가격은 2013년(17만4892원)을 정점으로 줄곧 하락, 지난 2월엔 12만원대로 떨어졌다. 과잉생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낭비인가? 지금 우리는 쌀 재고 관리에만 해마다 6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쓰고 있다. 우리가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돈을 모조리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먹거리의 수입을 봉쇄하지 않는 한 수입을 막고 정부가 지원한다고 그 시장이 지켜질 수는 없다. 어떤 산업이든 보호와 지원에 안주하는 것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죽는 길이다.

농산물 수입 크게 늘리는 중국

가격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우리나라는 아예 농업을 포기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경쟁력은 가격경쟁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품질경쟁력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농식품 분야에서도 품질 차별화와 고급화의 여지가 있고 질을 높이면 가격경쟁력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가 있다.

사람은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제일 먼저 먹거리의 질과 맛, 안전성을 챙기게 된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쌀 수입량은 1970년 37만t에서 2013년 272만t으로 7.4배 늘었다. 채소와 과일의 수입물량은 21.4배, 육류는 55배 불어났다. 유제품과 낙농제품 역시 각각 48배와 132배 급증했다.

한마디로 폭발적 수입 증가세다. 채소 과일의 증가 속도가 쌀보다 4배 이상 빠르고 축산물은 그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는 것은 중국에서도 소득수준 향상에 따른 식품 소비의 고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을 때 우리는 중국 부자들의 식탁을 공략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중국에 우리 농산물 시장을 조금이라도 덜 개방하려고 발버둥쳤다. 한·중 FTA에서 상호 농산물 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했더라면 우리는 다른 나라에 아직 덜 개방돼 있는 중국 농산물 시장에 먼저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데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1960년대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기는 제조업이나 농업, 서비스업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제조업은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라섰는데 농업과 서비스업은 어째서 아직도 보호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1960년대 우리는 제조업 중심으로 경제를 일으키기로 하면서 처음부터 수출 지향의 경제개발전략을 택했다. 그런데 수출을 하려면 국제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질의 상품을, 팔릴 수 있는 가격에 생산해야만 한다.

다음 단계는 과감한 수입개방이었다. 수출해야 할 업종이 내수시장에서 외국 제품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수입개방을 하지 않아도 열심히 일해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건설해 보겠다고 보호와 지원을 요구하는 것을 믿는 것은 시험 안 봐도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을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이를 통한 고급화를 추구했다. 고부가가치화 없이 가격경쟁력만 추구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제조업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부족한 역량은 남에게서 빌렸다. 의존은 가장 빠른 자립의 길이라는 것을 믿고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자본 기술 기계설비 마케팅 브랜드까지 외국에 의존해서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부족한 역량을 한꺼번에 빌려 오는 방법인 외국인 투자유치에도 적극적이었다. 반면 농업과 서비스업은 그 어느 것도 따라 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날 농업과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요인이다.

제조업 전략 베끼기만 해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제조업이 한 대로만 하자. 만약 우리가 1960년대부터 프랑스 덴마크 네덜란드 등 소위 농업 선진국들을 찾아가서 기술과 투자를 유치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농식품산업의 모습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중국 부자들의 식탁을 휩쓸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잉생산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농업은 ‘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생산만 하는 것은 ‘농사’이지 ‘농업’이 아니다. 생산한 것을 제값에 다 팔아서 돈을 벌어야 농업이라고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업은 수요예측과 판로 확보 등에서 시작된다. 시장의 수요 분석을 잘해서 적절한 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적당한 값에, 모두 팔아야 비로소 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 농업은 이런 고민을 아예 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쌀이 대표적인 경우지만 다른 작목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농업도 기업화해야 한다

시장 수요에 맞는 수준의 농식품을 실제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품종 개량과 기술 개발, 시설 투자 등이 필요한데 현재 대부분 농가에는 역부족이다. 생산물을 보관 가공 포장 유통 판매하는 단계도 대부분 중간상인들의 손에 맡겨져 있다.

우리나라 농업의 환골탈태는 농민들이 자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외부의 도움 없이 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그 전에 중국 농업이 품질에서까지 우리를 능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농업을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 특히 수출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업의 역량, 그중에서도 선진 외국 농기업의 역량을 끌어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이 농민의 영역까지 침범한다며 반대가 극심하다.

동부팜한농이 동양 최대 유리온실을 지어 방울토마토를 재배해 수출하려던 사업이나 LG CNS가 새만금에 중동 자본까지 끌어들여 세계적인 스마트팜을 만들어 보겠다던 구상은 모두 농민의 반대로 무산됐다. 더 역량 있는 대기업, 특히 세계적인 농기업의 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성공 확률을 가장 높일 수 있는 길인데 반대만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다른 사업과 마찬가지로 농업도 여러 사람이 각각 다른 생산요소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나눠 가지게 된다. 즉 토지 노동력 자본 기술 브랜드 경영능력 등이 결합돼야 국제경쟁력 있는 농업이 가능해진다.

어차피 기업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토지도 필요하다. 농업을 하고자 하는 기업에 토지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금까지 벌던 이상으로 받을 수만 있다면 기업의 참여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박병원 객원 대기자 bahk0924@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