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늘리기는 백병전이다.

입력 2017-02-09 23:54


(뉴욕=이심기 특파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줘서 정말 고맙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의 소도시 잉글우드클리프스에서 열린 LG전자 북미 신사옥 기공식. 마리오 크란잭 시장은 3분여간의 짧은 인사말을 하는 동안 LG를 향해 “감사드린다”는 말을 다섯번이나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2015년 말 취임한 크란잭 시장은 2010년부터 추진된 LG전자 신사옥 건설이 환경단체의 반대로 6년 넘게 표류하자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LG전자가 추진 중인 8층 높이의 신사옥이 인근 팰리세이즈 국립자연 보호지의 경관을 해친다며 반대한 환경단체와의 입장차를 좁히기 위해 설득과 회유에 나섰다. “3층 이상은 안 된다”며 완강히 버티던 환경단체에는 “시의회가 이미 8층 건설 계획을 승인했다. 더 이상 떼를 쓰지 말라”고 압박했다. LG에는 “대승적 차원에서 양보해달라”고 읍소했다. 이렇게 해서 양측은 지난해 층고를 5층(70피트)으로 낮추는 절충안에 전격 합의했고 이날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테네시 등 미국 내 투자유망 지역의 주정부 공무원들은 요즘 투자 유치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해외기업을 압박해 투자약속을 받아내고 있지만 과실을 따먹는 건 전적으로 주정부의 역량이다. 공장 유치 실패는 곧 다음 선거의 낙선, 즉 자신의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 한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서 생산원가를 최소화하려면 최대한 많은 투자 인센티브를 받아내야 한다”며 “입찰에서 최저가를 적어낸 업체에 공사를 맡기듯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국계 교포 A씨는 지난해 한국 국적의 직원 한 명을 뽑았다가 곤경에 처했다. 뉴욕시에서 “영주권 발급을 후원하면서까지 외국인을 뽑는 이유가 뭐냐”며 조사를 나왔고, 그 직원이 맡는 업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따졌다. 며칠 뒤에는 IRS(미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와 회계장부를 뒤졌다. A씨는 “웬만하면 미국인을 뽑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며 “그 이후에는 미국인 아닌 외국인을 뽑을 엄두를 못낸다”고 말했다.

맨해튼의 한국계 은행지점 관계자는 최근 “미국 금융당국의 감사를 받을 때마다 한국서 파견된 직원의 업무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미국인 중에서 전문자격을 가진 인력이 많은데 왜 굳이 외국인을 쓰느냐는 투였다고 전했다.

뉴욕시 곳곳에 흩어진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느 곳이든 코딩(Coding) 무료강좌가 개설돼 있다. 불법체류자이든 집 없는 홈리스든 따지지 않는다. 누구나 기본 과정을 이수한 뒤 실력에 따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뉴욕시 CTO(최고기술책임자)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맨해튼의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프로그래머를 공급하는 일이다.

최근 만난 한 현지 한국인 기업가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전쟁으로 따지면 백병전과 같다”고 말했다. 중앙과 공공기관, 지방 정부의 끝단 조직까지 일자리 마인드를 갖고 현장을 챙겨야 그나마 있는 일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서 새로 생긴 약 1500만개의 일자리는 모두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규제를 풀어 투자를 늘리고, 소비와 함께 경기가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늘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순진하거나 절박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의 제안은 이렇다. 한국 정부가 목매는 외국인 투자유치 실적을 금액이 아닌 일자리로 평가해보면 어떨까. 법인세 명목세율을 올리더라도 고용투자세액 공제율을 지금보다 10배쯤 높이면 어떨까. 해외공관장 우선 평가항목에 청년실업자의 해외 취업 알선 실적을 넣으면 어떨가. 수 만개의 일자리를 늘릴 화끈한 정책 한 방? 그런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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