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4차 산업혁명' 전쟁 벌이는데
우리는 미래아닌 과거 파헤치기 몰두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도전의지 다져야
윤은기 <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
지난해 6월 세상을 떠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5년 9월6일이었다. 그는 1980년 《제3의 물결》이란 베스트셀러를 통해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미래학자였다. 인류는 수천년에 걸친 농업혁명을 지나 기계동력을 중심으로 한 300여년의 산업혁명을 거쳐 향후 20~30년은 정보혁명이라는 제3의 물결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우리나라에도 큰 충격을 줬다.
그 당시 초청자는 한국경제신문사였고 토플러는 약 1주일간 머물면서 ‘제3의 물결’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것이 가져올 엄청난 기회와 위험에 대해 역설했다. 그 내용은 《한국인과 제3의 물결》이란 책으로 출간돼 다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 토플러의 방한은 ‘제3의 물결’이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실이라는 각성을 하게 만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토플러 방한 이후 한국 사회는 제3의 물결에 대응하기 위한 대대적인 도전이 이뤄지게 됐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보문화운동, 정보화인력육성, 정보산업투자, 정보통신부 신설 등이 계속 이어지게 됐고 한국은 제3의 물결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국가가 됐다. 토플러도 생전에 “제1의 물결, 제2의 물결, 제3의 물결을 당대에 한꺼번에 이뤄낸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30여년 동안 세계적으로 번졌던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체제에서 한국이 잘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정보인프라나 정보산업이 경쟁력을 이끌어줬기 때문이다.
미래는 결국 현재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돼 있다. 현재 우리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19세기 말 조선이 몰락한 것은 산업혁명이란 신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수구적 자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미래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지도자라는 말은 선지자, 선각자, 선도자와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데 모두 미래를 내다보고 미래에 먼저 대응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필자는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재임 시절 베트남 정부 초청으로 ‘호찌민 정치행정아카데미’를 방문한 적이 있다. 베트남 정부에서 ‘차세대 리더’를 육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데 베트남 공무원에게 한국의 발전정책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베트남 정부는 베트남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육성하는 데 벤치마킹할 국가를 두 나라로 정해 놓고 있었다. 유럽의 프랑스와 아시아의 한국이었다. 프랑스로부터는 선진국 정책을 배우고 한국으로부터는 단기간 내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과정을 배우겠다는 의도에서 결정된 일이었다. 프랑스는 과거 베트남을 식민통치했던 나라고, 한국은 베트남전에서 서로 총을 겨눴던 사이였다. 그러나 베트남 지도자들은 아무도 과거 이야기는 입 밖에 꺼내지도 않았다.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라를 발전시켜 부강한 나라를 후대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할 뿐이었다. 지금 베트남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제3의 물결’을 넘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미 많은 나라가 범국가적으로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세워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미 또 한 번의 미래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와 싸우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 논쟁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이 주요 현안이 되고 있다. 과거를 파헤치는 일도 잘한 것과 잘된 것은 애써 외면하고 잘못한 일과 잘못된 것 위주로 파헤치고 있으니 시대착오적인 국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 정치가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이유도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과거사 파헤치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정치일정상 새로운 정권이 탄생되는 시기다. 정치세력마다 집권의 당위성을 말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래보다는 과거사를 이슈화하고 있다. 여야를 떠나 그리고 진보나 보수를 떠나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다가오는 신문명에 대한 통찰력과 도전의지가 있는지를 살펴볼 일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미래가 희망이다.
윤은기 <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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