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경남 사천 KAI 본사
전세계 모든 항공기에 KAI 제품
프라모델 조립하듯 날개·동체 척척
자동차처럼 항공기 전장화 서둘러
항공기 5000대 분량 부품 납품
방산 관행 벗어나 10억 달러 수출탑
[ 안대규 기자 ]
“전 세계 모든 항공기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제품이 들어간다고 보면 됩니다.”
항공산업 후발주자인 한국에서 KAI는 올 한 해 글로벌 양대 항공제조사인 보잉사와 에어버스를 상대로 매출 1조1000억원을 거둬들였다. KAI 관계자는 “보잉과 에어버스의 비행기 동체, 날개, 꼬리날개 중 상당 부분은 경남 사천에서 제작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9일 보잉과 에어버스 항공기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사천 KAI 본사를 찾았다.
◆항공기도 ‘전장화’…로봇도 활용
축구장 3개 크기의 거대한 실내 공장에는 수십개의 항공기 날개, 동체, 헬기 구조물이 프라모델처럼 조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날개와 동체 속은 각종 전기선이 핏줄처럼 구석구석 채우고 있다. 항공기도 자동차처럼 전자장비화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공장에는 KAI가 개발한 항공기 시제품을 들었다 놨다 하며 충격을 가하는 테스트장비가 눈에 띄었다.
KAI 관계자는 “안전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개발 후 한 달가량 각종 위험에 견딜 수 있는지 점검한다”고 말했다. 항공기 부품에 요구되는 정밀도는 자동차 부품보다 100배가량 높다. 알루미늄합금 첨단복합재 등 항공기 표면을 조립할 때는 용접하지 않고 수십개의 구멍을 뚫어 접합(리베팅)했다. 높은 고도에서 기압과 열을 견디려면 용접을 통한 조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날개에 구멍을 뚫어주는 로봇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100명분의 일감을 해내고 있었다. KAI가 자체 개발한 생산용 로봇이다. 서울 여의도 3분의 1 면적(100만4000㎡)의 KAI 본사 부지에는 이런 공장이 15개나 가동되고 있다.
◆민수부문 수출 6년 만에 세 배
KAI는 지난 5일 제53회 무역의날 행사에서 10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하성용 KAI 사장도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보잉과 에어버스에 항공기 동체를 납품하는 민수부문의 기여도가 컸다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KAI는 항공기 5000대 분량의 날개, 동체 등을 납품했다. 2010년 3300억원이던 민수부문 매출은 6년 만에 세 배를 넘어서며 1조1000억원을 돌파했다.
KAI는 저비용항공사(LCC)가 애용하는 중단거리 인기기종인 B737 꼬리 날개의 세계 수요량 50%를 제작한다. 보잉의 차세대 항공기인 B787 기종의 동체 일부분도 KAI가 100% 납품하고 있다. 에어버스 최신기종 A350의 날개골격(윙립)은 KAI가 100% 납품하고 있다. KAI는 A350 윙립을 위해 별도 공장을 짓고 아시아 최초로 설계승인권도 얻었다. 보잉의 공격용 헬기 아파치 동체도 전량 KAI가 생산하고 있다.
송호철 KAI 경영전략팀장은 “글로벌 항공제작사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 업체보다 KAI를 찾는 이유는 품질이 뛰어나고 인력의 기술숙련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AI는 현재 매출 비중이 60%인 민수와 수출용 완제기부문을 향후 70%까지 늘릴 계획이다. 과거 정부가 먹여살리던 방산업계 관행에서 벗어나 민수부문에서 수출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KAI가 가야할 길은 아직 멀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과 중국이 항공기 부품 공급에서 벗어나 독자 민항기 양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KAI는 2019년부터 90인승 이하 독자 중소형 민항기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다른 나라 업체와의 경쟁도 버거운 상태다. 한국 항공제작산업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전 세계 항공제조 분야 39위권인 KAI는 2020년까지 15위권으로 도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남 사천=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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