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비핵심 자산 정리부터" 영풍제지 대수술…인사혁신·직접경영으로 흑자전환 이끌어

입력 2016-12-06 18:48
사모펀드의 경영 노하우 탐구 (7) 영풍제지 적자 수렁서 건져낸 큐캐피탈

잠재력 보고 인수 결정
전자상거래·홈쇼핑 시장 커지며 "포장박스 수요 늘 것" 판단

뼈 깎는 구조조정
고임금 받던 임원들 '퇴출'…구매체계 혁신 등 시스템 효율화
30억 넘는 비용 절감 성과


[ 이동훈/정소람 기자 ] ▶마켓인사이트 12월6일 오전 6시11분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큐캐피탈파트너스가 작년 말 영풍제지 지분 50.54%를 시가(인수 전 3개월 평균주가 2834원)의 2배가 넘는 650억원(주당 5792원)에 인수하자 인수합병(M&A) 업계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영풍제지는 2013년 1월 이무진 회장의 부인인 노미정 부회장이 새 주인이 된 뒤 3년 연속 실적이 추락하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2012년 1000억원이 넘던 매출은 지난해 767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65억원에서 2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벼랑 끝 전술’로 영풍제지 인수

시장 반응이 달라진 건 올 3분기 영풍제지 실적이 나온 뒤부터였다. 올 9월 말까지 매출은 648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가량 늘었다. 적자에 빠졌던 영업은 흑자로 전환했다.

황희연 큐캐피탈 전무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이유에 대해 “영업적자를 냈지만 잠재력이 있는 데다 숨은 가치가 있는 회사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큐캐피탈은 인수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2015년 안에 인수절차를 마무리짓겠다”는 제안이었다. 2016년부터 중소기업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 붙는 양도세율이 매각총액의 10%에서 20%로 높아지는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고심을 거듭하던 노 부회장은 이 제안에 끌려 큐캐피탈의 손을 들어줬다.

이 제안은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풍제지의 비핵심 자산에 대한 가치 재평가로 거래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에서 큐캐피탈이 협상의 칼자루를 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큐캐피탈은 계약 체결을 이틀 앞두고 제주도에 있는 테마파크 가격을 낮추지 않으면 거래를 무산시키겠다고 노 부회장을 압박했다. 노 부회장은 양도세율 인상을 적용받아 50억~60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가로 내는 것보다 연말 전 파는 게 낫다고 보고 테마파크에 대한 가치 산정을 큐캐피탈에 일임했다. 큐캐피탈의 ‘벼랑 끝 전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비핵심 자산만 450억원 ‘숨은 진주’

큐캐피탈은 영풍제지가 국내 지관원지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라는 점에 주목했다. 지관원지는 휴지나 화학섬유, 필름 등 산업용품에 사용되는 심지의 원재료다. 영풍제지의 지관원지 시장 점유율은 23% 수준. 이에 비해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지관원지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포장 박스의 원재료로 사용되는 라이너지의 매출 비중이 높다는 사실도 감안했다. 전자상거래와 홈쇼핑 시장 확대로 포장 박스 수요가 증가하면 영풍제지도 수혜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올 10월 말 기준 영풍제지의 지관원지와 라이너지 매출 비중은 각각 49.7%, 50.3%다.

큐캐피탈은 영풍제지가 보유한 비핵심 자산만 팔아도 투자금액의 70%가량을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사를 통해 파악한 영풍제지 비핵심 자산은 비상장 주식 200억원, 비영업용 부동산 250억원 등 총 45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422만6430주)도 현 시장 거래가(주당 2730원)로 치면 115억원에 달했다.

최용림 큐캐피탈 선임심사역은 “비핵심 자산과 자사주, 저평가돼 있는 자산 등을 감안하면 영풍제지를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가량에 인수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PEF 대표가 직접 CEO로 나서

큐캐피탈은 영풍제지를 인수한 뒤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김동준 대표를 파견했다. 2014년 큐캐피탈 사령탑을 맡은 김 대표는 2004년 큐캐피탈의 모회사인 큐로그룹에 입사한 뒤 한국창투 큐로컴 큐로홀딩스 등 주요 계열사 대표를 맡아 회사 실적을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김 대표는 올 3월 영풍제지 CEO에 취임한 뒤 곧바로 메스를 들었다. 먼저 인사 개혁을 수술대에 올렸다.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비롯해 경영진 5~6명을 신규 선임했다. 또 비핵심 자산 관리와 매각을 위해 큐로그룹 계열 핵심 임원을 파견했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도 크게 낮췄다. 높은 연봉을 받던 이무진 회장과 노미정 부회장이 퇴진한 데다 기여도에 비해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평가된 기존 임원들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20억원 가까운 판매관리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구매 체계도 바꿨다. 화학약품과 지관용지의 원료가 되는 고지 및 펄프 구매 절차를 개선해 10억원이 넘는 비용을 줄였다. 김 대표는 “앞으로는 비핵심 자산을 매각한 자금과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신사업 투자 재원으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정소람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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