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곳이 '벌어들이는' 곳으로

입력 2016-12-02 17:58
도심 폐공장·창고가 카페·갤러리로…'돈되는 변신'

"넓고 싸다"…재생건축 인기
3300㎡ 리모델링비 5000만원대
한적한 곳에 많아 임대료도 싸
낡은 벽·기둥 살려 이색 인테리어


[ 설지연 기자 ]
최근 폐(廢)공장이나 오래된 창고가 카페나 갤러리 등으로 변신하는 ‘재생 건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002년 강릉 커피공장을 카페로 바꾼 ‘테라로사 커피’를 시작으로 2010년대 서울 성수동 ‘대림창고’ 등이 유명해지면서 서울 합정동·한남동과 부산, 제주 등에서 오래된 건축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재활용하는 공간 활용이 인기다. 옛 정취를 찾는 젊은 층의 발길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높고, 크고, 싸다”

2009년 서울 합정동의 1970년대 신발공장을 개조해 문을 연 카페 ‘앤트러사이트’는 높은 층고, 녹슨 철문을 활용한 테이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인테리어 등 오래된 공간의 정취를 살려 이 일대 명소로 떠올랐다. 2014년 12월 제주 한림읍에서 지은 지 70년 된 전분공장을 임차해 2호점을 열었고, 작년엔 서울 한남동에 3호점까지 개장했다.


앤트러사이트가 폐공장 등 오래된 건물만 찾아 매장을 여는 이유는 ‘크고 싸서’다. 김평래 앤트러사이트 대표는 “공장은 공간이 넓고 주변에 상가가 형성돼 있지 않아 임대료가 저렴한 점이 매력”이라며 “멀끔한 곳이라고 꼭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며 공간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합정점은 처음 문을 열 당시 전용 230㎡ 규모에 월 임대료가 170만원이었다. 지금은 1200만~1500만원 수준으로 6년 만에 10배 가까이 올랐다. 신발공장 모습을 거의 그대로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춰 리모델링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공장에 남아 있는 부품을 인테리어에 활용하고 직원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해 커피 기계, 제빙기 등을 구입하는 것을 포함해 카페로 개조하는 데 5000만원가량 들었다는 설명이다. 제주 한림점도 3300㎡가 넘는 공장 부지지만 리모델링 비용 5000만~6000만원에 월세는 200만원 수준이다.

매장은 하루 방문객이 점포별로 200~300명에 달한다. 주말엔 700~800명까지도 몰린다. 김 대표는 “옛날 터빈 같은 게 남아 있는 공장을 보여주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된 느낌에 매료”

지난달까지 ‘2016 부산비엔날레’가 열린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 건물은 원래 현수교, 자동차 타이어 등에 들어가는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고려제강의 옛 수영공장이었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반세기 동안 철강제품을 생산하던 산업시설을 리모델링을 거쳐 1만650㎡에 달하는 부산 최대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했다.

외부는 공장 외형을 유지하고 전시장 내부는 높은 천장과 철기둥, 시멘트벽과 바닥 등을 그대로 살려 설치예술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9월부터 지난달까지 열린 비엔날레엔 총 3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외부엔 프라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펍을 비롯해 강릉의 유명 커피숍 테라로사가 입점해 있다. 카페 ‘테라로사부산’은 와이어를 활용한 공간 장식에 와이어를 감던 보빙을 재활용한 탁자, 원두 포대, 각종 빈티지한 소품을 활용해 공간을 꾸몄다.

공장을 20년간 임차해 카페를 선보인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는 “공장 바닥에 철이 굉장히 많았는데 폐철을 다 펴고 두드려 테이블과 바로 만들었다”며 “1320㎡의 바닥면적을 새 공간으로 바꾸는 데 수억원이 들었지만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홍수 속에서 세월이 지닌 느낌을 살린 독특한 공간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성호 신한은행 미래설계센터 부동산팀장은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뉴욕 첼시마켓 등 산업 유산을 철거하는 대신 살리고 고쳐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해외에선 흔했는데 최근엔 국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며 “오래된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느낌을 살려 미학적, 건축학적 완성도를 갖춘 건물이 수요자를 끌어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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