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브로맨스 혹은 프레너미, 중국의 속내는?

입력 2016-11-14 17:40
탐색기 지나면 미·중 마찰은 상시적일 것
한국은 많은 대화와 거래 카드 확보해야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


미국 대선을 한 달쯤 앞둔 지난달 중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6개국에서 미 대선 후보 지지율을 알아봤다. 투표일이 임박해 발표된 결과에서 한국과 중국의 후보 평가는 뚜렷하게 갈렸다. 한국에서 7%에 그친 트럼프 지지율이 중국에선 39%나 됐다. 여섯 나라 중 가장 높다. 한반도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서는 클린턴을 선호(69%)한 한국과 달리 중국에선 트럼프(52%) 선호도가 높았다. 그 때문인가.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서 이변과 쇼크였고 ‘퍼펙트 스톰’이었다. 중국에선 두 개의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적중한 듯한 느낌이었다.

주목할 움직임은 또 있다. 다니엘 벨 칭화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의 트럼프 호감도는 일반인보다 전문가 그룹에서 더 높다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국민이 트럼프를 훨씬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유세 기간에 트럼졍?중국에 대해 저격수 같은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훔쳐갔다. 위안화를 평가절하했다. 모든 중국산 제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

중국이 오랜 시간 익숙한 클린턴보다 온갖 거북한 말만 쏟아낸 낯선 트럼프를 선호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경제관계. 중국은 미국 선거의 법칙을 잘 아는 듯하다. 유세 기간에 표를 의식한 발언들이 취임 후 반드시 정책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비밀 아닌 비밀 말이다. 트럼프의 대(對)중국 통상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중국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둘째, 국제관계. 그동안 중국이 가장 꺼리는 미국의 정책은 클린턴과 오바마의 ‘피봇 투 아시아’ 전략이었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아시아 회귀 내지는 힘의 재균형을 내세웠지만 중국이 볼 때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가로막는 봉쇄정책에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중국에 불리한 큰 그림이 트럼프에게는 없다. 미국우선주의자인 그는 아시아 각국에 각자도생하라고 한다. 트럼프가 좋다기보다는 덜 미운 것이다.

셋째, 중국은 공화당 정부가 협상 파트너로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밝혔듯이 주고받는 것을 좋아한다. 외교도 경제도 거래로 생각한다. 예측하기 어렵고 상대하기 버거운 냉철한 현실주의자적 특성도 있지만 서로 주고받을 카드가 있다면 좋은 거래 상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이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의 친밀한 관계) 사이가 될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양국은 일정한 탐색기를 거치면 자국 이익 우선주의가 현실로 표면화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마찰은 상시적으로 불거질 것이다. 양국관계의 기본은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한 프레너미(frenemy)이기 때문이다.

한국 앞에는 당장 세 가지 과제가 있다. 트럼프 당선자를 더 이상 아웃사이더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와 정치·외교 전선에 미치는 영향을 단기·중기·장기로 분석해야 한다. 강대국 간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도 잘 들어봐야 한다. 앞으로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은 더 많은 대화를 할 것이다. 거래를 위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논리가 있었다. 이제 세계는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상대에게 내놓을 카드가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 주고 받을 카드가 많이 있어야만 안보관계도 경제관계도 지속 가능하다.

박한진 <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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