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수사 속도 내는 검찰 특별수사본부
삼성 서초사옥·마사회·승마협회 등 9곳
대가성 드러나면 '포괄적 뇌물죄' 적용돼
"우병우 황제소환 논란에 기업 압박수사" 지적도
[ 박한신 / 도병욱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 씨(60·최서원으로 개명)의 미르·K스포츠재단 사유화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이 8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등 9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삼성그룹이 최씨와 딸 정유라 씨(20)에게 280만유로(약 35억원)를 특혜 지원했다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이날 현대자동차그룹 고위 임원도 소환해 조사했다.
◆‘미전실’ 등 11시간 수색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단·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날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그룹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서, 경기 과천 한국마사회 사무실, 서울 오륜동 대한승마협회 사무실, 관련자들 자택 등 9곳을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삼성그룹 대관업무를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사무실이 포함됐다. 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과 협회 부회장인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의 자택·사무실도 압수수색했다.
특수본은 삼성과 승마협회가 최씨 모녀에게 자금을 불법 지원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최씨 모녀 소유의 스포츠 컨설팅 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280만유로(약 35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방식은 컨설팅 계약이지만 사실상 최씨 모녀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한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이 돈은 정씨의 말 구입과 훈련비용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수본은 삼성이 돈을 지원한 경위와 자금 성격, 대가성 여부 등을 수사할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상 재단 기금 모금을 지시한 것으로 판단되는 상황에서 이 돈의 대가성이 드러나면 박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가 적용될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삼성은 최씨 모녀에게 흘러들어간 280만유로 외에도 두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했다.
특수본은 이날 박모 현대차 부사장을 불러 조사하는 등 두 재단에 돈을 낸 대기업 수사 속도를 높였다. 현대차는 128억원을 냈다. 특수본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기금을 출연한 배경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전수조사를 통해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것”이라면서도 “(기업들이) 사실과 맞지 않는 얘기를 하면 총수도 불러 조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8년 만의 압수수색에 ‘당혹’
삼성그룹 본사가 압수수색당한 것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8년 만이다. 당시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서울 태평로에 있던 삼성전자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삼성그룹 컨트롤타워가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재편된 이후 첫 본사 압수수색이다.
삼성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룹 내부에서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예상보다 빨라 놀랐다는 반응이 나온다. 검찰이 승마협회장인 박 사장 등 관련자뿐만 아니라 미래전략실까지 겨냥하자 분위기가 더욱 뒤숭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전략실 소속 임직원들은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직전인 오전 6시30분께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안팎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다음달 초로 예정된 사장단 인사와 내년 사업 계획 수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우병우 황제소환 논란’ 파문을 무마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수사 강도를 더 높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검찰 출신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는 ‘무딘 칼’을, 기업에는 ‘지나치게 예리한 칼’을 들이대는 게 아니냐”며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기업을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박한신/도병욱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