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뮤즈'가 된 브랜드, 예술의 반열에 오르다

입력 2016-09-22 17:36
브랜드와 아티스트, 공생의 법칙

제랄딘 미셸 외 지음 / 배영란 옮김 / 예경 / 296쪽│1만9000원


[ 송태형 기자 ] 간접광고(PPL)가 성행하는 요즘, 예술작품에 브랜드가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 상업 공연에서도 특정 브랜드와 상품을 대놓고 노출시킨다. 제작자는 작품을 제작하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고, 브랜드는 작품이 흥행하면 상당한 매출 증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브랜드는 예술계와 손을 잡아서 얻는 이득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예술과 결합한 브랜드가 경제적 효용성을 높이고, 차별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PPL뿐 아니다. 브랜드는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계와 교류한다. 브랜드 이름이 붙은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세우고, 예술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그들을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브랜드와 예술의 공생에 이런 계약 형태의 교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예술가가 근대의 산물이자 소비사회의 꽃인 브랜드를 활용해 시대와 사회를 작품에 담아냈다.

《브랜드와 아티스트, 공생의 법칙》은 예술가들이 내적 성찰을 바탕으로 찬미적 시각이나 비판적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그들의 작품에 브랜드에 대한 예술적 증언을 남겼는지 짚어본다. 제랄딘 미셸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 경영대학원 교수 등 프랑스 학자 13명이 함께 썼다. 이들은 1865년부터 2015년까지 회화, 조형미술, 소설, 영화, 음악, 만화, 거리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브랜드를 소재로 삼은 예술가 35명과 그들의 작품을 분석했다.

에두아르 마네가 파리의 공연식 주점의 모습을 그린 1882년작 ‘폴리 베르제르 술집’에는 영국 맥주 ‘바스’가 등장한다. 전경에 삼각형의 바스 라벨이 붙은 맥주들이 대번에 눈에 띈다. 이 로고는 작품에 사실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당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교류하던 이 주점의 근대적 면모를 보여준다. 이렇듯 브랜드는 작품에서 사회적·문화적 지표이자 한 시대의 증인이 됐다.

브랜드는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줬다. 많은 아티스트가 작품의 재미나 향수, 감정 등을 유발하는 코드로 브랜드를 활용했다. 교묘하게 왜곡하거나 패러디해 새로운 미적 효과를 창출하기도 했다. 이런 창작 행위를 통해 브랜드는 더 신격화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됐다. 거리예술가 제우스는 로고를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광고 모델의 얼굴에 변형을 가했다. “개인과 사회 공간, 정신 영역을 침범한 브랜드의 패권주의에 반기를 들고자 하는 몸짓”이었다.

일부 기업은 작품에 자사 브랜드를 사용한 아티스트에게 강경하게 대응했다. 록그룹 더후가 오도르노 브랜드를 사용한 곡을 발표했을 때도 해당 기업에서 위자료를 청구했다. 반면 같은 곡에 실린 케첩 브랜드 舅适箏?앨범 재킷 사진 촬영을 지원하고 간식거리도 제공했다. 저자들은 “오늘날 하인즈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오도르노를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표현의 자유’를 수용한 기업을 옹호한다.

2010년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은 ‘로고라마’는 오늘날 브랜드의 예술화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미쉐린맨’이 ‘빅(Vic)보이’를 납치한 ‘로날드 맥도날드’를 추격하는 액션물이다. 기업의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2000여개 로고와 마스코트가 등장한다. 상표권을 위반했으니 고소당할 위험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작품에 ‘캐스팅’되지 못한 브랜드들은 외려 이를 더 유감스럽게 여겼다.

이 책의 원제인 ‘브랜드를 장악한 아티스트’가 무슨 의미인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저자들은 “브랜드들은 예술작품에 등장해 명성을 얻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작품에 브랜드가 쓰였다는 자체가 예술 분야에서 브랜드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