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교환·환불은 권고사항
소비자 보호 차원 법안 발의
업계선 "허용요건 제한해야"
[ 유승호 기자 ]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석 달 전 중형 승용차를 한 대 구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행 중에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있어 수리를 받았다. 그러나 비슷한 고장이 반복됐다. 김씨는 자동차 회사 측에 새 차량으로 교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동차에 비슷한 고장이 반복해 생기더라도 교환이나 환불을 받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들어온 자동차 관련 소비자 피해 731건 중 교환·환불이 이뤄진 것은 61건에 그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소비자분쟁 해결 기준은 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제조상 결함으로 인한 고장이 4회 이상 발생하면 제조사가 교환 또는 환불하도록 하고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 법적 강제성은 없다.
자동차가 잦은 고장을 일으킬 경우 자동차 교환·환불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지만 사소한 고장에도 교환·환불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악성 소비자)가 생기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권석창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자동차소비자보호법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소비자에게 인도한 차량이 18개월 안에 안전 관련 고장으로 2회 이상, 일반 고장으로 4회 이상 수리했는데도 문제가 계속되면 제조사는 차량을 교환해주거나 환불하도록 하고 있다.
이헌승 새누리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자동차 동력전달장치 등 주요 부품에서 3회 이상 중대 결함이 발생해 수리한 뒤에도 같은 고장이 일어나면 국토교통부 산하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 조사를 거쳐 교환 또는 환불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들 법안은 일명 ‘한국판 레몬법’으로 불린다. ‘레몬’은 겉으로는 맛있어 보이지만 신맛이 나는 과일 레몬처럼 겉은 멀쩡하지만 고장이 잦은 차량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은 1975년부터 레몬법으로 불리는 소비자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주별로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구입 후 1~2년 또는 주행거리 1만~2만마일 미만 차량에서 동일한 결함이 3~4회 이상 발생하면 교환·환불해주도록 하고 있다.
자동차는 가격이 수천만~수억원으로 비싼 데다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소비자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이 한국판 레몬법 추진을 뒷받침하는 논리다. 권 의원은 “자동차는 주택 다음으로 재산 가치가 높은데 중대한 결함이 발생해도 자동차 회사 측은 제조 과정상 문제가 없었다는 등의 이유로 합당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동차업계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수천만~수억원에 이르는 자동차를 교환·환불해주면 그만큼 큰 손실을 떠안는다. 자동차업계는 지금도 제조사 측 책임이 인정되면 교환·환불을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교환·환불이 쉬워지면 이를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가 등장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자동차업계는 한국판 레몬법을 시행하려면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결함이 있을 경우에만 교환·환불을 허용하는 등 요건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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