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가 바꿔놓은 유럽
(1) 돈 넘치는 유럽, 커지는 부동산 거품
'고교 졸업하면 독립' 북유럽 전통 무너져
독일 프랑크푸르트 임대료 열흘새 10% 올라
[ 박동휘 / 김우섭 기자 ]
덴마크 코펜하겐은 요즘 늘어나는 ‘캥거루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한 이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들이 독립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19개국과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가 경쟁적으로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유럽인들의 전통적 삶의 방식까지 바꿔 놓고 있다.
○급증하는 주택담보대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2014년 6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초과 지급준비금 금리를 마이너스로 책정하면서 본격화됐다. 시중은행은 현금을 갖고 있어 봤자 유지 비용이 들고, 그렇다고 중앙은행에 맡기자니 보관료를 물어야 하는 터라 대출 자산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중앙은행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중에 풀린 돈은 부동산 가격을 부채질하는 쪽으로만 움직였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테레스 아문센 씨(57)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5월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50㎡ 규모의 아파트를 159만9000크로네(약 2억7300만원)에 샀다. 시내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위한 투자였다.
그는 “학생인 아들이 낼 수 있는 돈은 월 5000크로네(약 85만원) 정도인데 시내 아파트 임차료가 월 1만크로네에 육박할 정도로 올랐다”며 “은행에서 빌리는 주택대출 이자가 월 5500크로네 정도니까 차라리 아들한테 임대료를 받는 것으로 하고 집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자녀를 위해 주택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례가 올해 전체 주택 구매의 16%를 차지한다. 고교 졸업 후 부모에게서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것으로 유명한 북유럽의 전통이 변하고 있다.
스웨덴 부동산 가격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민자와 난민이 몰리며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데다 대출금리가 연 1% 이하로 떨어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다. 스웨덴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말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2003년 대비 3.4배 늘었다.
○치솟는 임대료
주택을 거주 개념이 아니라 투자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김은성 KOTRA 스웨덴 무역관장은 “얼마 전 스웨덴 부자들이 밀집한 동네에서 임대료 수입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한 사람을 투표를 통해 쫓아내는 바람에 법정 분쟁까지 간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독일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유럽의 금융 허브 후보지로 주목받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고 있다. 프랑크 じF?시내 노르트엔드와 베스트엔드의 주택 가격은 2010년 대비 71%나 급등했다. ECB가 자리 잡은 프랑크푸르트 오스트엔드 지역의 ㎡당 임대료는 브렉시트 결정(지난달 24일)이 이뤄진 지 열흘 정도 지난 7월4일 ㎡당 16유로 수준으로 10% 이상 올랐다.
부동산시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각국 정부는 대출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를 속속 내놓고 있다. 스웨덴은 신규 대출에 한해 주택 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85%에서 70%로 낮췄다. 프레더릭 프렌버그 스웨덴 노디아뱅크 자산관리부문 부사장은 “언젠가 금리가 상승 기조로 전환되면 가계 대출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품’에 대한 우려인 것이다.
■ 마이너스 금리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금할 때 받는 이자를 마이너스로 책정한 것을 말한다.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벌칙을 부과하면 은행은 대출을 확대하고 개인은 소비를 늘려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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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취리히=박동휘/코펜하겐·프랑크푸르트=김우섭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