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을 위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기보다 대출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출장차 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중앙은행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국가자원을 배분할 권한이 없다”며 “한은법상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20조원 규모로 계획했던 ‘은행자본확충펀드’ 방식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력을 확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긴급 상황에서 한가하게 원칙론만 앞세우던 한은이 대안을 내놓은 점이 우선 다행스럽다. 그간 한은은 ‘구조조정은 재정의 역할이고, 발권력 동원은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며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 해운·조선업 구조조정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감안한다면 한은이 무언가 대안을 내놓은 것은 큰 진전이다.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 대신 대출을 모색해 보자는 한은의 대안은 일리가 있다.
우선 통화신용 정책이 특정 산업의 구조조정 목적에 쓰이는 건 매우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도 있다. 발권력은 손쉬운 유혹이지만, 구조조정은 결국 누군가의 부담과 손실을 전제로 한다는 면에서 보편적 통화 정책을 동원한 자금 지원은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통화의 증발은 어떤 경우건 국민 모두의 재산 탈취와 비슷한 ‘눈속임 조세’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마땅하다. 한은법이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은이 시행하게 될 담보부 대출의 구조를 올바르게 짜는 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 당시 담보 제공자였던 산업은행이 이번에는 자본확충을 받는 당사자인 탓에 대타도 구해야 한다. 정부와 한은이 머리를 맞댄다면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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