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나라

입력 2016-03-29 18:03
총선 전 정치는 없고, 경제는 추락
한국 이끈 기업가 정신도 하락 추세
'풀뿌리 혁신' 확산돼야 경제가 산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


여야를 불문한 ‘막장 공천’ 여파에 4·13 총선의 정책 대결은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정치에 대한 관심 대신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의 여진만 남은 형국이다. 모임마다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올 ‘직업 살생부’가 화제에 오른다. 경제학자가 대부분인 한 모임에서는 어떤 직업이 없어질 것인가를 놓고 입씨름이 벌어졌다.

경제학자도 그 대상인데 교수는 아직 감성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사라질 대상에서 조금은 거리가 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경제 현안에 대한 불꽃 튀는 논쟁이 벌어질 자리였는데 엉뚱한 문제에 열을 올렸나 싶어 돌아오는 차 안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작금의 한국 경제 상황은 백척간두에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저물가·저금리·저성장으로 대표되는 ‘뉴노멀’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경제질서가 몰아치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최근 5년 연속 주요 20개국(G20)의 평균 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한국 경제가 먼저 장기 저성장 늪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경고가 수없이 나왔지만 경제 체질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340달러로 전년보다 2.6% 줄었다. 2만823달러였던 2006년 이후 10년째 2만달러대에 갇혀 있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던 수출 감소세가 역대 최장인 15개월째임에도 지난해 한국이 수출 6위국으로 부상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의 한계를 말해준다. 수출이 급격히 주저앉은 요인으로 중국의 경기 둔화와 유가 하락을 지목하는데, 지난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으로의 수출은 5.6% 감소에 그쳤다. 전체 수출이 8%나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작년에 대중(對中) 수출이 전체 수출 감소세를 줄여줬다는 얘기다.

그런데 불행히도 중국은 올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 정책을 전환할 예정이다. 중국 경제의 경착륙이 일어나지 않아도 수출 증가를 통한 경제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고 기업은 수출 감소로 매출에 압박을 받아 투자 활동이 점점 더 위축될 것이다.

과거 30년간 한국 경제는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의 집중적인 투입으로 선진국을 빠르게 추격해왔다. 이젠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저성장 추세 지속과 자동화 확대로 일자리가 빠르게 없어지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융·복합적인 환경 아래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이런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기업가 정신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4위다. 한?제조업의 한계를 허물었다는 칭송을 듣던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이렇게 추락한 것이다.

망가진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해 투자 환경을 닦아주려는 정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규제개혁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외치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실행 부서로 갈수록 규제를 사수하려는 관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보스 포럼에서 글로벌 투자은행 UBS가 4차 산업혁명 백서를 통해 한국을 4차 산업혁명을 잘 수용할 수 있는 국가 139개국 중 25위로 꼽은 것은 매우 후한 평가란 생각이 든다. 첨단기술, 과학이 뒤떨어져 미래성장동력을 찾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기업, 정부, 국민 개개인이 정말로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란 측면에서 최악인 현재의 경제 상황 아래서는 생존과 현상 유지만 생각해선 답을 낼 수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를 결단해야 일자리가 늘고 청년실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사회 곳곳에 ‘풀뿌리 혁신’이 확산돼야 한다는 말이 크게 와 닿는다. 기업가 정신이 실종된 나라엔 미래가 없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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