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정확한 역법은 옛날 임금의 통치력 상징…양력설 1896년 도입·음력설과 충돌하다

입력 2016-02-12 16:14
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7) 음력설의 유래와 역법



설 연휴가 지났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셨는지요? 설은 음력 1월1일, 새해 첫날입니다. 음력은 달의 차고 기욺을 기준으로 한 달을 정하는 역법을 말합니다. 이슬람 지역에서 널리 쓰이며 순태음력, 혹은 회회력이라고 합니다. ‘회회’는 이슬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회회력은 이슬람 역법

조선왕조실록 세종조에 보면 ‘장사를 하러 입국한 회회노인이 천문지식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을 비롯해 여러 문헌에 회회가 등장합니다. 국제교류가 왕성하던 고려시대 기록에는 ‘회회’에 대한 문헌이 자주 보입니다. 수도인 개경(지금의 개성)은 몽골 사람이 운영하는 몽골식 만두가게(쌍화점)가 있고 페르시아산 유리를 파는 회회인이 있었을 만큼 국제도시였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던 역법은 같은 음력이라도 태음태양력이라고 합니다. 달의 차고 기욺에 더해 계절의 변화, 즉 태양의 일주까지를 고려한 역법입니다. 음력은 한 달이 29~30일입니다. 1년 열두 달 354일입니다. 3~4년에 한 번 윤달을 두어 이 차이를 조정합니다. 윤달은 2월에 올 수도 있고 3, 4월에 올 수도 있습니다. 정월과 12월을 빼면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조선시대 사림파 영수였던 김종직이 지은 한시에 ‘윤이월 스무하룻날 길 가는 도중에 눈바람을 만나다’는 대목이 있고 도종환 시인은 ‘사람에게 걸었던 그리움마저 허전하고 허전하고 하 허전해서 몸도 따라 하염없이 저무는 윤삼월’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작품 ‘윤사월’에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1896년 7월21일 독립신문에는 ‘작년 윤오월 열나흗날 밤에 박영효가 망명도주할 적에’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윤달은 왜 있는가?

윤달은 24절기 중 우수 춘분 곡우 소만 등 중기가 없고, 입춘 경칩 청명 입하 등 절기가 있는 달에 배치합니다. 민속에서는 윤달은 ‘덤으로 생긴 달’이라 하여 혼례, 건축, 수의 만들기 등을 하기에 좋은 때라고 믿습니다. 이때 출생하거나 사망하면 생일과 기일을 두 번 챙기는 것이 관례입니다. 예를 들어 윤삼월 초하루 출생이라면 매해 삼월 초하루에 맞춰 잔치를 하고 윤삼월이 돌아오면 그때도 초하루를 기념하는 식입니다. 금년에는 윤달이 없습니다. 다음 윤달은 차례로 2017년 5월, 2020년 4? 2023년 2월, 2025년 6월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쓰고 있는 음력은 고대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수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역법을 제정하고 반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가 역법이고, 농사의 흥망이 여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산의 대부분이 농업을 통해 이루어지던 시대에 ‘농사의 흥망’은 대다수 사람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이 사라진 것은 인류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훌륭한 역법은 ‘미래 기상예측’을 그만큼 잘한다는 의미였고 백성들은 이를 ‘임금이 하늘의 뜻을 잘 읽는다’고 인식했습니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 위서 30 오환선비동이전 부여조에 ‘은(殷) 정월에 제사 지내는 국중대회는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데, 그 이름을 영고(迎鼓)라 하였다’는 문헌이 있습니다. ‘은 정월’이라고 표기한 것은 ‘영고’가 새해맞이 행사였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당시 달력으로는 음력 12월이 은나라의 정월이었기에 이렇게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말이 난 김에 잠깐 옆으로 비켜가보겠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이 사용했던 국호는 상(商)입니다. ‘상업’의 의미보다는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은(殷)은 ‘번성하다’의 뜻이 있지만 이 글자는 갑골문(은나라 사람들의 발명품입니다. 갑골문이 발전해서 오늘날의 한자가 되었습니다)에서는 ‘임신한 여성을 피가 나도록 매질하여 주술적 힘을 강화한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글자 왼편이 임신한 여성, 오른편이 매질의 형상입니다. ‘은나라’라는 말은 은을 무너뜨린 주(周)나라 사람들이 은나라를 ‘미개하며 주술에 의존하는 사람들’이었다며 은근히 멸시하는 호칭으로 부르던 국호입니다. 이 글 위에 저는 ‘몽골’이라는 국호를 썼지요. 중국 사람들은 ‘몽고’라는 명칭을 오랫동안 사용했습니다. 국호 몽골을 비슷한 음을 가진 한자로 옮기면서 ‘몽매하고 고루하다’는 뜻이 들어있는 ‘몽고(蒙古)’라는 글자를 고른 것입니다.

양력설은 일본명절?

우리나라에 양력설이 처음 도입된 때는 1896년입니다. 음력 1896년 11월17일을 양력 1897년 1월1일로 정한 것이지요. 당시의 국호는 조선입니다. 대한제국 선포가 그해 10월12일입니다. 얼마나 혁신적인 사건이었던지, 개혁을 추진하던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를 건양(建陽)이라고 정했을 정도입니다. 글자 그대로, ‘양력을 채택했다’는 뜻입니다. ‘조선 최초의 연호’가 가지는 상징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제는 태양력의 도입이 세계적 추세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단발령 시행과 더불어 일본의 압력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인이 양력설을 ‘일본 명절’로 인식하는 ‘감정충돌’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세계적 추세에 따라 양력설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만(1월1일부터 3일까지 공휴일), 음력설을 중시하는 민간풍습은 여전히 왕성했습니다.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1989년부터는 공식 명칭을 ‘설’로 바꾸고 사흘 연휴가 되었습니다. 1990년에는 양력설, 설 모두 사흘씩 휴일이었지요. 지금처럼 ‘양력설 하루, 설 사흘 연휴’는 1999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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