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유동성 함정과 4대 절벽…한국도 마이너스 금리?

입력 2016-01-31 18:50
한국 경제 '일본화' 우려 확산
수출·소비·재정·인구 동시 절벽
노동 등 구조조정 늦추면 위기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국 경제가 심상치 않다. 2010년 이후 성장률은 ‘미니 더블딥’(2011년 3.7%→2012년 2.3%, 2014년 3.3%→2015년 2.6%)을 겪었다. 이 중 2014년 3분기 이후에는 ‘스네이크형(形)’(2014년 3분기 0.8%→4분기 0.3%→2015년 1분기 0.8%→2분기 0.3%→3분기 1.3%→4분기 0.6%)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기순환과 성장이론에서 두 국면이 동시에 나타나면 장기침체를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과 ‘4대 절벽’에 빠져 인위적인 경기부양이 쉽지 않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발전단계상 ‘중진국 함정’과 함께 1990년대 이후 일본 경제처럼 ‘잃어버린 10년’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른바 ‘일본화’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유동성 함정이란 통화정책의 무력화 국면을 말한다. 돈을 풀더라도 미래 불확실성으로 실물경제에 들어가기보다는 시중에서 퇴장하거나 단기 부동화한다. 금리 수준이 너무 낮아 추가적으로 금리를 내리더라도 총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다. 금융과 실물이 따로 노는 ‘이분법(dichotomy)’ 경제다.

압축 성장의 전형인 한국 경제에 상징성이 큰 수출이 급감하는 ‘수출절벽’이 우려되는 것도 문제다. 작년 내내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면서 연간 무역 규모(수출+수입) 1조달러가 무너졌다. 올 들어 지난 20일까지 수출은 20% 이상 급감해 그 속도가 작년보다 더 빨라졌다.

수출 감소세는 쉽게 복구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급락, 환율 전쟁 등으로 세계 교역 증가율이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낮은 기형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증적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는 한국과 같은 수출의존적 국가일수록 더 심한 타격을 받는다.

총수요 항목별 성장 기여도가 가장 높은 소비가 꺾이는 ‘소비절벽’도 우려된다. 작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충격에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 등으로 어렵게 버텼다. 하지만 가처분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블랙프라이데이 등을 통한 소비 진작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그다음 분기부터는 소비가 급감하는 후유증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소비도 쉽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해 증가율은 2%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계획했던 임금 인상, 배당 확대 등을 통한 ‘역(逆)바세나르 협정’(임금 삭감 등으로 네덜란드 병을 극복한 바세나르 협정의 반대 개념)식 소비 촉진책도 노·사·정 대타협 결렬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

여유가 많은 재정정책은 절벽에 빠진 지 오래다. 재정건전도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7%에 불과하다. 신흥국 위험 수준인 70%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재정 여유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르웨이에 이어 두 번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OECD 등이 당면한 한국 경제 현안을 풀어가기 위해 재정정책을 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당리당략에 몰두한 여야 간 극한대립으로 재정지출을 위해 필요한 경제입법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4월 총선을 기점으로 각종 선거 일정이 본격화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정절벽’이 고착화할 위험도 높다.

‘인구절벽’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 이후 받쳐줄 자산계층이 없다. 핵심 자산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마저 나온다.

유동성 함정과 4대 절벽의 근본적인 대책은 구조조정이다. 4대 부문 중 노동개혁이 시급하다. 이번에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아르헨티나처럼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 이런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모든 경제주체가 ‘프로 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 공익을 위해서)’ 정신을 발휘한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유동성 함정에 처했을 때 추가 금리 인하(마이너스 금리)나 한국판 양적 완화 처방은 부작용만 더 노출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복원될 수 있도록 미래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이 우선순위다. 독자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는 ‘수출절벽’을 막기 위해선 원화 환율을 높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재정절벽은 대승적 차원에서 국회가 경제입법을 마련해줘야 한다. 페이 고(pay-go: 일반 경직성 지출을 줄여 그 재원으로 부양효과가 큰 투자성 지출을 늘리는 항목 조정) 등과 같은 제3의 정책도 필요하다. 고령화가 빠르고 출산율이 낮은 우리 인구구조 특성을 고려하면 인구절벽에 대해선 이제부터 이민정책 등 글로벌 해법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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