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KTX, 빠름과 바름 사이

입력 2016-01-31 17:40
시속 300㎞의 고속철도 속도로 인한 부작용도 커
좁아진 생활권 범위만큼 영호남 벽도 허물어지길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 >


한때 내 발은 자동차였다. 1년에 자동차로 움직인 거리는 4만km 정도였다. 요즘은 KTX를 주로 애용한다. 1주일에 서너 번은 KTX를 타고 서울과 지방을 오간다. 이동 시간이 최대 3분의 1로 줄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은 표 구하는 것도 전쟁이다. 그만큼 KTX가 대중화되고, ‘빠름’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단점도 생겼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전북은행 본점이 있는 전주까지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쯤 걸렸다. 바쁜 일상에 부족한 잠을 채우기에 넉넉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호남 고속철도 개통으로 이런 망중한(忙中閑)은 반 토막으로 줄었다. 심지어 하루에 전주와 광주 두 탕을 뛰는 일정도 많아졌다. 시속 300㎞를 자랑하는 신문물의 등장으로 업무 효율은 높아졌지만, 몸은 더 고달파진 셈이다.

수도권 쏠림 현상도 심상치 않다. KTX 덕분에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영세한 지방 상권은 위협받고 있다. 가끔 KTX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광활한 김제평야와 나주평야가 5분도 안 되는 사이 휙 지나간다. 워낙 빠르다 보니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새도 없이 휙휙 날아가 버린다.

한번은 KTX 표를 구하지 못해 옛날(?)처럼 자동차를 탔다. 차창 밖 풍경은 마치 슬로 모션(slow motion)처럼 느리디느렸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오, 간사한 마음이여….

KTX의 빠른 속도에 익숙해질수록 방향과 속도 사이의 함수 관계를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지나치게 빨리 달리는 건 아닌지….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반나절 생활권 시대에 살면서 여전히 동·서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도 불편하다. 자주 봐야 서로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할 텐데도 KTX는커녕 영호남을 오가는 버스조차 드물다. 양쪽을 잇는 교통수단이 다양해지고 늘어나면 지역감정의 벽도 시나브로 허물어지지 않을까. 아무리 빠르더라도 방향이 올바르지 않으면 목적지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한 < JB금융그룹 회장 chairman@jbf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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