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GTT '특허 갑질'] GTT, 저장탱크 특허 무기로 '로열티 폭리'…한국서만 1조 챙겨

입력 2016-01-27 18:26
국내 조선사에 우월적 지위 남용…공정위 조사

LNG선 값의 5% 로열티…"GTT세(稅) 횡포"
특허 끼워팔기·부당한 비용 전가 등 혐의


[ 황정수 기자 ]
국내 스마트폰업계에서 통용되는 ‘퀄컴세(稅)’처럼 조선업계엔 ‘GTT세(稅)’란 말이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한 척 건조할 때마다 배값의 5%인 100억~200억원 정도를 꼬박꼬박 GTT에 특허사용료(로열티)로 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세계 LNG 운반선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국내 조선 3사는 매년 2000억~3000억원을 낸다. 2010년 이후 현재까지 총 1조원 이상의 로열티를 GTT에 지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로열티를 받는 것은 특허권자의 권리다. 하지만 거의 모든 조선회사가 활용할 수밖에 없는 ‘표준필수특허(기업들이 합의한 세계 공용특허)’를 남용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전문가들은 표준필수특허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확보한 GTT가 조선사들에 불공정한 특허사용권 계약을 강요하고 폭리를 취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표준필수특허 남용은 법 위반

공정거래위원회는 GTT가 표준특허 준칙인 프랜드(FRAND)를 무시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프랜드는 ‘표준필수특허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방식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표준필수특허를 가진 업체들이 이를 무기로 횡포를 부리지 말라는 얘기다.

GTT는 영하 162도 이하로 냉각시켜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인 LNG를 저장할 수 있는 LNG 운반선 저장탱크의 표준필수특허를 갖고 있다.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LNG 운반선 419척의 71%가 GTT의 표준필수특허 기술로 제조된 LNG 저장탱크를 싣고 있다. 2008년 이후 LNG 운반선이 대형화하면서 2008~2014년 세계 조선업체들이 수주한 LNG 운반선 174척 중 90%에 GTT 기술이 활용됐다.

하지만 GTT는 표준필수특허를 불공정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가 국내 조선업체로부터 입수한 특허사용 계약서엔 △특허 사용권 제한 △특허 끼워팔기 △부당 비용 전가 등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GTT는 갑(甲)질의 대명사”

대표적인 게 ‘애프터서비스 강제 이용 조항’이다. GTT는 LNG 운반선 저장탱크가 고장이 났을 때 수리 난이도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조선업체들이 무조건 GTT 본사의 기술자를 부르도록 강제하고 있다. 계약서에는 수리비와 함께 기술자들의 항공료, 호텔비, 활동비 등도 모두 국내 조선업체들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GTT는 국제적인 ‘갑질’의 대명사”라고 말했다.

GTT는 표준필수특허 사용 관련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굳이 조선사들이 쓸 필요가 없는 특허도 끼워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사 관계자는 “GTT의 기술이 현재 상황에서 고난도 기술도 아닌데 표준필수특허에 여러 기술을 끼워 넣어 각종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LNG 저장탱크 가격이 아닌 LNG 선박 가격을 기초로 로열티를 받는 GTT의 관행도 문제로 지적됐다. LNG 운반선값에 로열티도 일부 포함되긴 하지만 GTT가 배값의 5%를 가만히 앉아서 가져가는 것은 폭리라는 주장이다. 2015년 GTT가 체결한 LNG 운반선 저장탱크 특허사용 계약 35건 중 33건이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그룹과 맺은 것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앞으로도 최소 3000억원 이상의 로열티를 GTT에 지급해야 할 것이란 관측이다.

공정위가 GTT의 법 위반을 입증하면 GTT에 관련 매출의 최대 3%까지(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고 불합리한 계약 관행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시장지배력 남용 혐의를 적시한 심사보고서를 보낸 퀄컴과 비슷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며 “국내 조선업체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GTT의 관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기 때문에 조사에 착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선 공정위의 조사를 계기로 일본, 중국 등의 경쟁당국도 조사에 착수하면 GTT의 불합리한 특허계약 관행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