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맥아더

입력 2016-01-27 17:4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맥아더가 다녀갔다길래 무슨 얘긴가 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이재한 감독)에서 그의 역할을 맡은 배우 리암 니슨이 촬영하고 갔는데 이미지가 워낙 닮아서 나온 말이었다. 살짝 공개된 스틸컷을 보니 영락없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 파이프를 문 모습까지 빼닮았다.

선글라스와 파이프는 ‘장군 맥아더’와 ‘인간 맥아더’의 양면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선글라스는 15세기 중국 판관들이 눈빛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연수정(煙水晶) 안경에서 유래했다. 이것이 카리스마의 상징이 됐다. 스코틀랜드 이민자 출신 장군의 아들로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을 지휘하고 전후 필리핀, 일본을 통치한 맥아더의 권위가 여기에서 나왔다. 아버지가 행군 때마다 사병들과 똑같이 걷는 모습을 보고 규율의 엄격함을 일찍 체득한 ‘어린 맥아더’의 면모도 마찬가지다.

이와 달리 파이프 담배는 품격과 경륜, 신념과 고집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상류층 출신의 전쟁 영웅답게 그는 고급 브라이어 파이프를 애용했다. 이걸 깜빡 잊고 온 날 옥수수 파이프를 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유명해졌지만 평소엔 브라이어를 즐겼다. 이는 궐련의 대중성과 차별화된 고품격 이미지, 오랜 경륜과 고집스러운 신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면은 ‘냉정과 다정’으로 대별되는 그의 인간성과도 맞닿아 있다. 학창시절부터 호불호가 분명했던 그는 가식적인 사람에게는 지나치리만큼 차가웠다. 고압적이고 도도하다는 평도 들었다. 하지만 이웃이나 부하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따뜻했다. 오랜 친구인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아낌없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의 공과(功過)를 둘러싼 평가도 상반된다. 공산주의에 반대한 정치적 신념과 대통령과의 불화는 잘 알려진 얘기다. 그의 과오를 논하는 사람들은 일본 천황제를 용인한 것과 6·25때 만주 진공에 실패한 것을 크게 꼽는다. ‘천황은 인간’이라는 고백을 받아내며 신격화 금지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군국주의 부활을 막지 못했으니 그럴 만하다. “이참에 공산주의의 뿌리를 뽑겠다”며 밀어붙였던 만주 폭격론은 트루먼 대통령의 제한전쟁론으로 좌절됐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가 일본의 민주화 토대를 닦고 압록강 너머에 북폭을 감행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완충지대가 만주가 됐다면 지금의 우리 상황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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