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57년이나 된 오래된 차트가 미국 중앙은행(Fed)을 양분시키고 있다.’
지난 24일자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이다. 문제의 차트는 필립스 곡선이다. 뉴질랜드 출신 영국 경제학자 A W 필립스는 1958년 발표한 논문에서 임금상승률과 실업률 간에는 역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1861~1957년 영국의 실업률과 명목임금 변화율에 대한 실증적 연구 결과였다. 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되는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과 로버트 솔로는 1960년 미국에서도 이 같은 역의 관계가 실증적으로 성립한다며 이 관계를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라고 불렀다.
이후 필립스 곡선은 거시경제학의 중심적 주제로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실업률을 이용해 인플레이션율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로 사용되면서 경제정책의 유용한 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히 케인스학파의 재량적인 재정 및 통화정책에 당위성을 제공했다. 정부 개입을 통해 후생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이 등장하면서 필립스 곡선의 유용성에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밀턴 프리드먼, 에드먼드 펠프스와 같은 경제학 湄湧?장기적으로 실업률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연실업률에 수렴하며 결과적으로 장기 필립스 곡선은 수직을 이룬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필립스 곡선에 이런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9월 실업률은 5.1%로 완전고용 목표인 4.9%에 접근해 있다. 그런데도 9월 소비자물가는 한 달 전보다 오히려 0.2% 하락했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Fed가 바로 이 필립스 곡선을 둘러싸고 견해가 갈리고 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필립스 곡선 신뢰파다. 그는 “실업률 하락으로 Fed가 목표로 하는 물가상승률 2% 달성이 시간문제인 만큼 조만간 금리를 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여기에 동조한다. 반면 대니얼 타룰로 이사는 “지난 10년간 필립스 곡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이를 근거로 금리를 올리는 것은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도 비슷한 견해다.
전 세계 이목이 Fed에 몰려 있는 요즘이다. Fed 내 이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철 지난(?) 필립스 곡선을 둘러싼 것이라니 다소 의외다. 옐런의 믿음대로 조만간 미국에 인플레가 고개를 들게 될지, 아니면 저물가가 당분간 지속될지 재밌는 관전 포인트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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