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 창달에 기여한 노벨상
특정문제 해결·계량분석 벗어나
경제를 보는 근원적 시각 바꿔야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개발원조 대신 자유무역을 주창한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리스턴대 교수를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10월의 화려한 노벨상 잔치가 막을 내렸다. 잔치는 끝났지만 풀어야 할 게 남아 있다. 노벨경제학상이 경제학의 발전과 인류의 풍요로운 삶에 얼마나 기여했고 기여할 것이냐의 문제다.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1969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만든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의 이름만 따왔을 뿐 사실상 ‘노벨상’이 아니다. 노벨은 자연과학을 애호한 성공한 기업가였지만 경제학은 본능적으로 싫어했다는 전언이다.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 발전을 위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쉽게 가릴 수 있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경제학은 그 업적을 평가하기가 간단치 않다. 인간사회의 복잡한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상자 결정이 자의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상자들 중에는 위대한 학자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진 ‘하루살이’ 수상자가 더 많다. 잘못 선정된 결과인 것이다. 경제학의 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수상자도 있지만 이를 훼손하는 데 영향을 미친 위험한 수상자도 많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처럼 위대하지만 노벨상 문전에는 가보지 못한 인물도 있다.
노벨상은 오늘날 유행하는 ‘주류경제학’을 심화시킬지 모른다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염려가 흥미롭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그 자신이 1974년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그런 우려가 완화되기는 했다. 노벨상이 없었다면 1930년대 하이에크가 주장한 계획경제의 불가능성, 케인스와 그 추종자들과의 값진 논쟁들, 자유시장에 대한 그의 탁월한 지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실패, 시장의 법과 윤리연구에도 시상함으로써 노벨상은 자유시장 창달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수리, 계량을 핵심으로 하는 주류경제학의 유행을 따르는 수상자들이 대부분이다. 노벨상은 주류경제학의 입지 강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하이에크의 우려는 여전히 유효하다.
노벨경제학상은 ‘막강한 권위’를 개인에게 부여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는 하이에크의 걱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상자의 지적 능력이 대단한 것처럼 각 분야에서 그를 우대한다. 수상자 스스로도 자신이 전능한 사람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하이에크의 그런 걱정이 일리가 있는 이유다.
이런 권위는 자연과학에서는 문제가 될 수 없다. 아는 척하는 과장된 행동을 하면 동료 전문가들이 견제한다. 경제학에는 그런 견제가 없다. 경제학의 영향력 범위가 정치가, 저널리스트, 일반대중 등 경제 비(非)전문가까지 광범위하기 때문이 ?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는 지적 자만에 빠져들기 쉽다. 빚을 얻어서라도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폴 크루그먼, 경제학을 제2의 물리학으로 만든 폴 새뮤얼슨 같은 간섭주의적 성향 수상자들의 자만은 치명적이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마치 의사들이 윤리강령을 선서하듯이 수상자들도 겸손할 것을 맹세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은 더 이기적이고 그래서 부패에 연루되기 쉽다는 이유에서 이기심을 가르치는 경제학에 상금을 수여하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로 노벨경제학상을 철폐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경제학이 이기심을 조장한다는 논리가 설사 옳다고 해도 노벨경제학상을 철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대 수상자들을 보면 노벨경제학상이 이기적인 인간관을 극복하고 부패가 없는 투명사회를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노벨경제학상은 권위 있고 가치가 있는 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노벨상이 복잡한 현상의 경제문제를 근원적이고 폭넓게 보는 새로운 세계관의 개발 대신 특정 문제의 해결에 치중하는 단기적 풍조나 수리·계량분석의 유행을 강화시킬 위험성이다. 위대한 수상자가 아닌 위험한 수상자의 배출이 두렵다.
민경국 <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 kwumin@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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