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행
(박동휘 금융부 기자)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달 30일이면 주요 후보들이 그동안 준비해 온 ‘혁신’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마도 기존 금융업에선 보지 못했던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낡은 관행에 젖어 있던 기존 금융업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는 것도 자명합니다.
그런데 일각에선 인터넷전문은행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컨소시엄 형태로 복잡하게 주주가 구성됐다는 점이 향후 기업 경영에 장애물이 될 것이란 이유에서입니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카카오·한국금융지주 컨소시엄만해도 내홍의 불씨를 안고 있다는 게 냉정한 관전평입니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란 두 명의 거물이 언제까지 평화롭게 공존할 것이냐에 대한 의문입니다.
인가를 받는다는 전제 하에 신설 은행의 주주 구성과 관련해서도 카카오와 한국금융지주는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공식 석상에서 “향후 최대주주로 올라설 것”이라고 서슴치 않고 얘기합니다. 현행 은행법 아래에선 카카오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은행 지분을 최대 10%(이 중 6%는 의결권없는 지분)밖에 소유할 수 없습니다. 금융위원회가 의원입법 형태로 은행법을 개정,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하지 않은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50% 이상 보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만, 카카오가 벌써부터 신설 은행의 최대주주가 되겠다고 공언하는 것은 왠지 어색해 보입니다.
이 문제는 지난 14일 금융위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습니다. 카카오와 한국금융지주간 지분 변동에 관한 주주간협약이 있는 지 여부가 질의 중 하나로 올라왔습니다. 카카오 말을 들어보면 주주간협약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금융지주의 반응입니다. 이에 대해 공식 대응은 하고 있지 않지만 임원 등 몇몇 고위 관계자들은 “협약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금융지주는 은행 지분 보유에 제약이 없어 최소 30% 이상 신설 은행의 지분을 보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냐에 관한 미묘한 입장 차이 이런 상황을 만든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그리고 인터넷은행 인가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금융지주보단 카카오가 훨씬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인가권을 가진 금융위도 카카오라는 3400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ICT기업의 혁신성을 높이 사고 있습니다. ‘카카오가 하면 뭔가 다를 것이다’라는 인식이 꽤나 널리 퍼져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금융지주는 몸을 사려야 할 상황입니다. 행여나 ‘오매불망 은행업에 뛰어들 날만 기다리던 증권사’라는 인식을 줘선 안되니까요. 올 6월 금융위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안을 발표할 때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가 ‘제2금융권의 은행업 진출을 위한 통로가 되선 안된다’는 것이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전문가들은 카카오와 한국금융지주 중 누가 더 많은 지분을 갖게 될 것인지는 결국 ‘돈 싸움’으로 판결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신설 은행은 자본금 3000억원으로 시작할 예정인데 최소 1조원으로 증자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입니다. 종자돈이 넉넉해야 많은 예금도 유치하고, 대출 시장에도 뛰어들 수 있을테니까요. 예컨대 우리은행은 올해 6월 말 현재 자본금 19조원에 이를 기반으로 자산을 286조원 규모로 키웠습니다. 대략 자산이 자본금의 15배 정도인 셈입니다. 카카오·한국금융지주가 자본금 3000억원짜리 은행을 만들어봐야 총 자산을 5조원 이상 늘리기는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증자 이슈가 불거졌을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한국금융지주일겁니다. 한국투자증권 등 6개 자회사와 15개 손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한국금융지주는 작년에만 2392억원의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매년 2000억원 안팎의 이익을 내는 데다 100%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의 이익 잉여금만해도 1조4868억원에 달합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쏠 자금이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카카오도 돈을 잘 버는 회사이긴 합니다. 영업현금창출력이 매년 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됩니다. 사업 특성상 공장을 짓는다던가 R&D 투자가 거액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어서 버는 돈들을 유보현금으로 쌓아놓을 여력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한국금융지주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초기 기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올해만해도 새로운 서비스들을 계속 선보이면서 비용을 꽤 많이 稚銖構?있습니다. ‘김기사’라는 길찾기 앱을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카카오가 은행법 족쇄에서 풀려 증자를 통해 신설 인터넷은행 지분을 확보하려할 때 한국금융지주보다 많은 돈을 넣을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얘기입니다. 어쩌면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의 침묵은 ‘시간이 약’이라는 격언에 따른 것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예상대로라면 카카오는 수레 앞에서 제 위용을 뽐낸 사마귀(당랑거철) 신세가 될 터입니다. (끝)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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