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환율 취약국'으로 전락한 한국

입력 2015-08-19 18:12
수정 2015-08-20 14:30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 이심기 기자 ]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경쟁관계가 아니다. 노동집약 상품에 특화돼 있는 중국과 달리 가격 경쟁력이 비교우위 요인이 아니다. 중국을 주요 부품의 공급망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다. 대(對)중국 수출 역시 가격 민감도가 낮은 최고급 부품과 기계류에 집중돼 있어 타격이 적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통화정책 변동에 따른 충격은 작으며 통화 가치 전망도 중립을 유지한다.”

최근 중국 위안화 평가 절하 영향을 분석한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환율 보고서의 일본에 대한 분석 내용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30%를 넘고, 국내총생산(GDP) 의존도가 10% 이상인 한국을 대표적인 ‘통화 약세국’으로 분류한 것과 대조적이다.

2년 만에 투자불안 국가로

시계를 약 2년 전인 2013년 11월로 돌려보자.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올여름 세계 시장이 혼란기를 통과하는 동안 한국은 ‘안전 투자처(safe haven)’로 부상했다.”

당시 한국과 정례정책협의회를 마친 국제통화기금(IMF) 조사단장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위험?회피하려는 각국 중앙은행과 국부펀드에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격찬하면서 한 말이다.

그해 여름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 완화 축소로 신흥국 금융시장이 긴축발작(테이퍼링 탠트럼)으로 소용돌이칠 때였다. 지금은 Fed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려는 문턱에 서 있다. 모두 Fed발 위기징조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불과 2년 만에 한국에 대한 외부 평가가 돌변한 원인 중 하나는 중국이다. 올 들어 통화 가치가 가장 많이 떨어진 10개국 가운데 한국의 지난해 대중 수출의존도는 30%로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 동남아 국가의 약 두 배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한 한국계 애널리스트는 “모건스탠리가 공식화한 것일 뿐 대부분의 다른 투자은행들도 이미 한국을 통화 약세국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키울 골든타임 놓쳐

최근 만난 일본의 한 투자회사 리서치 담당자는 한국의 ‘실기(失機)’를 언급했다. 그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한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고 중국과의 기술적 우위를 확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며 “하지만 한국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반사이익만 취하며 안주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중국의 성장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됐고, 중국이 성장하면서 기술격차가 추월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일 때마다 “한국은 다르다. 취약한 신흥국과 차별화가 이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관료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모건스탠리가 내놓은 환율 보고서에 대해 정부 관계자들은 “월가 투자은행들이 근거 없이 위기를 자극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규제를 과감히 풀고, 기업들은 새로운 영역에 활발히 투자해 생산성을 높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월가에서는 아마도 “기술과 제품의 격차가 여전해 한국과 중국은 대등한 경쟁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중국의 불안이 오히려 원화에 대한 투자 수요를 늘릴 것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을 것이다. 월가를 탓하기에 앞서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부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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