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연세대 동문 가수들 불러모은 '노래방수업' 교수

입력 2015-05-19 13:19
수정 2015-05-19 18:03
7080인기곡 '연' 만든 싱어송라이터… 35년만의 독집앨범
"연대 개인주의 이미지 바꾸고 싶어… 모두 흔쾌히 응했다"



[ 김봉구 기자 ] 인사를 나누고 두 장의 명함을 받았다.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장, 그리고 연세대 언더우드특훈교수란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함은 한 사람의 것이다. 다소 이질적인 이들 명함의 주인이 조진원 연세대 교수(시스템생물학과·사진)다.

초면에 의례적으로 주고받지만 명함은 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싱어송라이터협회장 명함엔 흘려 쓴 글씨체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사각 테두리가 모나지 않고 둥글다. 딱딱하지 않고 디자인에 신경 쓴 예술계 인사의 명함이다.

명함엔 그의 대표 작품들이 함께 명기됐다. 라이너스 ‘연(鳶)’, 조진원·홍종임 ‘사랑하는 사람아’, 이명훈 ‘얼굴 빨개졌다네’ 작사·작곡. “하늘 높이 날아라, 내 맘마저 날아라”란 후렴구가 친숙한 ‘연’은 손꼽히는 7080 히트곡이다. 듀엣곡 ‘사랑하는 사람아’는 당시 여대생들이 뽑은 최고의 곡이었다. 곡의 인기에 힘입어 동명의 영화(정윤희·한진희 주연)가 제작되기도 했다.

다른 한 장은 대학 교수의 공식 명함이다. 빳빳한 재질과 각진 모서리, 고딕체 글씨에 학교 문양이 배경으로 깔렸다. 융합오믹스 의생명과학과 주임교수,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24회 국제복합당질학회 조직위원장 등 학내외 직책이 늘어섰다.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특훈교수로 선정된 게 눈에 띈다.

두 명함의 공존에는 ‘과학과 예술은 함께 갈 수 있다’는 조 교수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수십년째 연구자이자 뮤지션으로서의 ‘이중생활’을 이어온 그만의 지론인 셈이다.

“그게 그렇게 특이한 건지 모르겠어요. 연구하고 노래하는 게 특이하지 않은 세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위에선 학교에서 인정하는 특훈교수도 됐으니 이제 노래 그만두고 연구·교육에 전념하라고도 해요. 그런데 제게 노래는 충전이에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죠.”

그는 1979년 대학생 신분으로 참가한 한 가요제에서 수상하며 가요계에 입문했다. 곡들은 반응이 좋았다. 3연타석 홈런을 쳤다. 이듬해 그가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도 나왔다. 하지만 곧 활동을 접었다. 가요계 활동을 계속하면 학위 공부를 포기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우선순위로 학업을 택한 그는 학위를 마치고 교수로 모교에 돌아왔다. 연구 분야는 당(糖) 생물학이다. 분자 하나로 된 당인 ‘오글루낵(O-GlcNAc)’ 연구로 큰 성과를 거뒀다. 오글루낵이 당뇨병과 관련 합병증 발병에 관여하는 상관관계를 규명,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셀 바이올로지’에 논문이 실리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연구실과 실험실을 오가며 논문을 쓰고 강의실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노래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연구에 지칠 때면 틈틈이 기타를 둘러멨다. 교양강의로 ‘노래방 수업’을 하고, 연세대 학생들이 노래 실력을 겨루는 ‘백양로 가요제’를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노래방 수업을 왜 했는지 알아요? 물론 제가 노래에 특기가 있기도 하지만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교수가 학생들 데리고 노래방에 가 수업한다, 상상도 못했잖아요. 교육에 있어 창의력이 뭡니까. 갖춰진 사고의 벽을 깨는 거죠. 틀에 갇혀 있으면 창의력은 절대 안 나와요.”

조 교수는 최근 무척 바빴다. 연대 출신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오월의 별 헤는 밤’ 행사 때문이다. 이달 말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이틀간 열리는 콘서트의 출연진 섭외를 도맡았다. 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가수들도 함께 한다. 모두 출연료 없이 재능 기부로 무대를 꾸민다.

쎄시봉 멤버 윤형주, 동물원과 동물원 출신 김창기, 더클래식 김광진을 비롯해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브라운아이즈 윤건, 연세대 출신 멤버들로 구성된 보컬그룹 스윗소로우, 클래지콰이 호란, 부부 가수 해이와 조규찬 등이 무대에 선다. 출연진 가운데 한대수는 한영교 연세대 초대 연합신학대학원장의 손자, 알리는 동문인 조명식 디지털타임스 대표의 딸이다.

“올해가 학교 창립 130주년입니다. 동문 가수들 많으니 함께 모여 공연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죠. 마침 윤형주 선배님도 같은 생각이더군요. 연대가 좀 개인주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걸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그런?기우였어요. 섭외하는데 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연이다. 앞서 디지털 음원으로 발표한 앨범 ‘아빠의 노래는 별이 되어’가 이달 말 시중에 공식 출시된다. 조 교수의 가요계 생활 첫 정규 앨범이다. 앨범에 수록된 신곡들은 콘서트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타이틀곡 ‘아빠의 노래는 별이 되어’는 “수현아, 정수야”로 시작한다. 딸과 아들의 이름이다. 그는 “교수로 연구하면서 살았고 애들은 일찍 유학을 가 함께 지낸 시간이 별로 없다. 아빠로서 해준 게 너무 없어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마음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차곡차곡 악보가 쌓였다. 수록곡 ‘연애금지’는 야간 통행금지가 풀린 1982년 써둔 곡이다. 당시 조 교수는 솔로였다고. 통금 해제 후 밤늦도록 붙어 다니는 연인들을 흘겨보며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그때의 감성이 살아있는 경쾌한 곡조다. 목소리도 젊다. ‘아빠의 노래는 별이 되어’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앨범엔 30년이 넘는 세월의 일상을 풍성하게 담았다. 또 다른 수록곡 ‘야! 우리 벚꽃 불 지르러 가자!’는 수업 시간 캠퍼스에 핀 벚꽃을 보며 학생들에게 한 말을 제목으로 옮겼다. 그는 “노래도 그렇지만 평소 ‘연대 출신 뮤지션이 참 많다, 노천극장에서 열리는 동문 공연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일단 말로 뱉어놓은 건 하는 성격”이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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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