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ERI 경영노트] 대기업도 스타트업처럼 '먼저 쏘고 나서 겨눠라'

입력 2015-05-08 07:00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초우량 기업의 조건’으로 기업 경영에 통찰력을 제시했던 톰 피터스는 ‘준비(Ready)→조준(Aim)→발사(Fire)’가 아닌 ‘Ready→Fire→Aim’의 순서를 강조한다. 먼저 쏘고 나서 겨누라는 것이다. 요즘처럼 날마다 새로운 혁신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스피드 경쟁의 시대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요즘, 소위 말하는 ‘최상의 타이밍’을 미리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치밀하게 세운 전투 계획도 첫 포성이 울리는 순간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돼버린다고 말했던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충고가 딱 들어맞는 시대라서다.

‘신중한 계획’보다 ‘빠른 실행’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몇 가지 상황을 살펴 보자. 우선 엔지니어들에게 혁신의 주도권이 주어진 경우다. 사업가와 달리 엔지니어들은 기술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더 좋은 기능, 더 많은 기능, 더 나은 기술을 추구하려는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든 본성이 있다. 자칫 ‘Ready→Aim→Aim…’으로 실행의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크다.

시급성이 크게 대두될 때도 계획보다 실행이 중요한 상황이다. 시급한 상황은 정확한 대응보다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다음으로, 살아있는 시장정보가 필요할 때다. 분석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면 정보과다로 인한 분석불능에 빠지기 쉽다. 마지막으로, 위험요인과 비용을 줄여야 하는 때다. 조금 덜 완벽하더라도 실행하고 보완해 나가는 것이 위험요인과 비용을 크게 줄이는 경우가 더 많다.

이와 같은 ‘먼저 쏘고 나서 겨누기(Ready→Fire→Aim)’ 방식은 소규모 벤처기업에나 적용될 수 있지 거대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로벌 공룡기업 GE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GE는 제프리 이멜트 회장 주도로 2~3년 전부터 ‘Ready→Fire→Aim’ 관점의 ‘패스트워크스(FastWorks)’라는 새로운 방식의 혁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초기 버전의 제품과 서비스를 시장과 고객에 좀 더 빨리 노출시켜 유용한 피드백을 조기에 더 많이 얻고 이를 토대로 필요한 방향 전환을 민첩하게 함으로써 제품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혁신을 촉진하는 효과도 있다.

GE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이미 4만명 이상의 직원들이 이 새로운 프로세스 혁신 운동을 주도하기 위해 훈련받은 상태다. 2015년 현재 GE의 전 세계 모든 사업장에 걸쳐 300개 이상의 패스트워크스 방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100개 이상이 2014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빨리 실패하고, 작게 실패하라’를 모토로 내세운 패스트워크스는 대기업에서 만들어내기 어려운 스타트업 문화를 구축하면서 조직 안팎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란제이 섬讚?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거대 기업이 겪는 가장 흔한 문제는 규모와 범위가 커질수록 시스템 및 구조와 프로세스가 복잡해져 결국 실행이 느려지고 리스크 테이킹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GE는 이런 거대함의 병리현상을 이해하고 있는 영리한 기업”이라며 GE의 변신을 높이 평가한다.

나폴레옹은 “극히 혼란스런 전투에서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일단 행동하고 나서 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리더의 의사결정은 그 영향력이 급속히 증가한다. 그래서 대개 내부적인 분석과 조율에 시간을 더 들이게 되고 그러다 시장의 타이밍을 놓치고 마는 ‘대기업병’에 걸린다. 피터 드러커는 “아무리 나쁜 의사결정이라도 하지 않은 것보다 낫다”는 충고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결정에 대한 판단하기 어려울 경우일수록 빠른 결정이라도 내려야 하는 것이 리더의 의무다.

강진구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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