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혹 이후 금융당국마저 손 떼
여신 담당자도 거래기업과 접촉 꺼려
30여개社 구조조정 대기…난항 예고
[ 이태명/김일규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전방위 로비 의혹이 정치권과 금융권을 뒤흔든 뒤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큰 혼란에 빠졌다.
성 전 회장의 집요한 대출 로비를 받아 세 차례에 걸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도왔다는 의혹이 금융권을 강타하면서 은행 여신 담당자들은 최근 들어 거래 기업 경영진과의 정상적인 면담마저 꺼리는 분위기다. 당장 채권은행끼리 의견 조율 등을 위해 열던 채권단협의회 모임도 줄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제 살길 찾으려는 은행들
기업 구조조정은 은행 입장에선 골치 아픈 일이다. 채권 규모에 따라 은행 간 이해득실도 다르다. 수백억~수천억원의 자금을 지원한 주채권은행은 선뜻 손을 뺄 수 없지만, 대출금이 얼마 안 되는 은행들은 빨리 손을 털고 나오고 싶어한다. 이 때문에 그동안 기업 구조조정 과정엔 늘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왔다.
경남기업 사건 이후 이런 관행은 바뀌었다. 금융당국이 손을 떼면서 채권은행 간 협의로 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그러나 건설·조선산업 구조조정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을 조율하는 데서부터 은행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부터 채권은행 일각에서 추진하려던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합병계획이 지지부진한 게 그런 사례다.
STX조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저가 수주로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합병해 경영 정상화를 이뤄보자는 계획을 추진했다. 성동조선 주채권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과 합병 관련 논의를 진행하려 했으나 진전이 없다. STX조선과 성동조선 채권은행 간 이해관계가 달라 도저히 조율하기 어려워서다.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지금 구조조정 작업에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다”며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하던 금융당국은 물론 은행 담당자들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34개 구조조정 기업 어쩌나
현재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나 워크아웃을 추진 중인 기업은 은행권 여신 500억원 이상의 대기업만 대한전선, STX조선 등 34곳에 달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어느 정도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도 자금 지원에 적극 나서려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대기업 관계자는 “조속한 회생을 위해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채권은행도 인정하고 있는데도 다른 채권회사를 설득해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요즘엔 은행 담당자와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 灌?rdquo;고 전했다.
은행들도 할 말은 있다. 회생 가능성을 보고 워크아웃 기업 등에 추가 집행한 대출이 부실화하면 무조건 ‘잘못된 결정’이라며 책임을 물으려는 사회 풍토 탓에 적극적인 의사결정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마저 손을 놓은 마당에 기업 퇴출 및 자금 지원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태명/김일규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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