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ONG KOREA] 우수인재라 뽑았는데 현장 투입 못해…기초교육까지 떠맡은 기업들

입력 2015-04-19 22:59
기초 강해야 융합시대 승자 된다 (4) 이공계 역량 약화에 기업들 속탄다

"과학 기초지식 갖춰야 시장 선도할 기술 개발"
현대모비스, 직무교육 3년으로

플랜트 인재 부족한 현대重, 원가산정 못해 손실 눈덩이

"최종 수요자는 기업…교육과정에 의견 반영해야"


[ 강현우 기자 ] 현대모비스는 지난해부터 신입사원 중 연구개발(R&D) 직군의 현장직무교육(OJT) 기간을 3년으로 늘렸다. 이전까지 R&D 직군의 OJT 기간은 다른 신입사원과 마찬가지로 1년이었다. “혁신 제품을 만들려면 신입사원 때부터 과학 기초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는 최고경영진의 방침을 반영한 조치였다.

현대모비스처럼 ‘빠른 추격자’에 머무르지 않고 ‘시장 선도자’로 도약하려는 대기업들은 과학기술 기초가 탄탄한 인재 육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기초가 탄탄한 인재 없이는 융합 기술력 확보를 통한 시장 선도가 불가능해서다.

문제는 국내 교육과정에서 배운 과학 소양만으로는 R&D 신입사원들이 현장에서 적응하기조차 어렵다는 데 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과학 기초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교?제도 개편을 바라는 이유다.

“과학 기초가 시장 선도의 필수”

현대모비스는 R&D 부문 신입사원의 OJT 기간을 늘린 것뿐 아니라 기존 직원들을 대상으로 과학·공학 기초지식을 다시 가르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있어도 과학 기초가 부족하면 창의성 있는 융합 부품을 제대로 만들 수 없어서다.

자율주행차나 수소연료전지차와 같은 미래 선도 기술도 결국 기초가 튼튼한 인재가 없으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고동록 현대모비스 인재개발실장은 “차세대 기술들도 결국 전기회로 혹은 센서 등 기초 기술을 응용해서 나오는 것”이라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면 기초 과학기술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달 경기 용인 중앙연구소에 이공계 대학생과 졸업생 200여명을 초청해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2013년 완공한 최신 연구시설을 보여주면서 인재 확보에 나선 것이다. 각 대학에 가서 하는 설명회로는 우수 인재를 뽑기 어렵다고 판단해 연구소 채용설명회 방식을 도입했다.

기업들의 우수 이공계 인재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쓸 만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채용 계획 조사에서 이공계 채용 비중은 평균 59.2%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경련이 기업 인사담당자 102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67%가 ‘이공계 우수 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기초 소양이 부족해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도 별도의 소양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시장서 고전하는 기업들

2013년 초 현대중공업 임원과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산학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해양 부문의 한 임원은 “조선 분야의 새로운 시장은 심해(深海)밖에 남지 않았다”며 “해양플랜트를 건설하기 위해선 엄청난 수압 등 가혹한 조건을 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으로 과학 기초교육 강화를 학교 측에 요구했다. 그는 “기계공학과 학생들에게도 물리와 화학 기초를 충실히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조923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저가 수주와 고가 기자재 수입 등이 겹친 게 주요인이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다른 조선사들도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부문에 진출했지만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현대중공업은 해양플랜트 부문에서만 매년 18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이르는 기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과학 기초인력을 충분히 확보한 뒤 기자재 수입대체 노력을 기울였다면 해양플랜트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성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교육과정 만들 때 기업도 참여”

SK하이닉스는 이공계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설계·공정·소자 등 각 직군에 적합한 교양·전공과목을 이수했는지와 과목별 학점을 평가 지표로 활용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이공계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물리·화학 등 교양 기초과목 성적부터 살펴본다.

이처럼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과학기술 소양을 갖췄는지 꼼꼼하게 따진다.

김우승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제대로 된 과학기술 인재를 기르려면 초·중학교에선 과학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고 고교에서는 현재 대학교 이공계 교양과목 수준의 물리·화학 교육을 해야 한다”며 “교육과정을 만들 때부터 인재의 최종 수요자인 기업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를 대학에서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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