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혼란 부른 행자부의 '땜질 행정'

입력 2015-03-17 21:03
수정 2015-03-18 03:48
의견수렴도 없이 '청부입법'…지자체 세무조사 막을 권한도 없이 대책 내놔

'3년 유예방안' 실효성 의문…지자체, 벌써 조사대상 확대


[ 김주완 기자 ] 행정자치부가 17일 226개 시·군·구 기초자치단체가 기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세무조사할 수 있는 개정 세법(지방세기본법·지방세법·지방세특례제한법)의 3년간 유예 방안을 내놨지만 전형적인 ‘땜질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 기업과 국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청부입법’을 통해 관련 법을 개정하더니 사정이 다급해지자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월권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식이라는 것.

○실효성 떨어지고 반발 부를 듯

전문가들은 행자부의 3년간 유예 방안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법인세 과세권이 지방정부로 넘어간 이상 중앙정부가 세무조사를 막을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김태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세정연구실장은 “지방세기본법에 따라 지자체는 언제든지 세무조사를 할 수 있다”며 “중앙정부에서 요청할 수 있지만 세무조사를 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한 세무법인의 세무사도 “도입 초기에는 역량과 인원이 부족해 쉽게 조사에 나설 수 없겠지만 세수에 쪼들린 지방정부에서 언제든지 징수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상당수 지자체는 개정 세법에 따라 대응팀을 따로 꾸리고 세무조사 강화 계획을 세웠다. 경남 진주시의 경우 법인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 대상을 지난해 98개에서 올해 120개로 늘렸다. 기획 세무조사 대상 업체도 지난해 10개에서 올해 120개로 대폭 확대했다. 행자부가 3년간 세무조사 유예를 강권할 경우 지자체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공청회도 열지 않고 ‘청부입법’

행자부는 지방에 사업장이나 지사(지점)를 둔 기업의 세부담과 세무조사 부담이 대폭 늘어나도록 관련 세법을 개정하면서 기업과 국민의 의견수렴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세제 개편의 골격이 담긴 지방세법 개정안은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된 ‘청부입법’이었다.

하지만 2013년 11월 관련 법이 발의된 데 이어 1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까지 공청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정부에서 발의하지 않았기에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예고 과정도 없었다. 지난해 5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상위 268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개정 지방세법에 따른 기업 부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91.4%가 “법 개정 이후 부담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당시 정부와 정치권에서 관련 법을 신속하게 처리한 것은 취득세 인하를 두고 불거진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주택 취득세를 영구 인하(6억원 이하 기준, 2%→1%)하려고 했지만 지자체는 관련 세수 감소를 이유로 반대했다.

이에 기획재정부와 행자부는 ‘중앙-지방 간 기능 및 재원조정 방안’을 마련해 지자체를 설득했다. 지방법인세에 대한 과세권을 지자체가 가져가고 지방소비세율을 5%에서 11%로 높이는 게 핵심이었다. 경제계 관계자는 “결국 기업에 큰 부담이 되는 정책 결정에 기업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세종=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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