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거센 후폭풍
청와대 "남북접촉 공개 국익에 도움되겠나"
MB측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판단해 공개"
[ 도병욱 기자 ]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남북 비밀 접촉 등 공개되면 민감한 내용들이 포함된 데다 세종시 수정안을 둘러싸고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이 직접 언급된 부분도 실렸기 때문이다. 전 정부와 현 정부가 충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같은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해 당초 다음달 초 예정된 회고록 출간 기자간담회 일정을 30일로 앞당겨 쟁점 부분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우선적으로 논란이 되는 부분은 남북 비밀 접촉과 관련, 남북정상회담 등을 조건으로 ‘돈 거래’ 얘기가 오갔다는 내용이다. 회고록 중 “내가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여당 대선 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받았고, 박 전 대표(박 대통령) 측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 않았다고 생각한다”는 문장도 박 대통령 측근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렀다.
○청와대·여야 모두 발끈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3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대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한 게 정 전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 것은 사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오해에서 한 것이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이라며 “세종시 수정안 얘기가 나왔을 때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결단(수정안 반대)을 내린 것인데, 그 문제가 정치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국민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회고록에 남북접촉이나 외국 정상과의 대화가 자세히 소개된 데 대해서도 “지금 남북대화를 비롯해 외교문제가 민감한데 이렇게 세세하게 공개되는 건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회담 전제 조건으로 돈 거래 얘기가 오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놀라운 일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전직 대통령이 퇴임한 지 2년도 안돼 재임 시절 비화를 공개한 것은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처사라고 공격했다.
새누리당에서는 하태경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형법상 외교상 기밀누설죄 위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도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책을 출간한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MB 측 “정책 분야만 소개했을 뿐”
회고록 집필을 주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청와대와 정치권의 반발에 대해 해명했다. 김 전 수석은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정치적 논란이 되는 건 한국의 독특한 문화일 뿐이고, 이 전 대통령은 정치와 무관한 정책 분야의 내용을 중심으로 회고록을 썼다”고 반박했다.
대북접촉 내용을 소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때 왜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는지, 당시 북한의 태도가 어땠는지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판단해 공개했다”며 “남북관계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고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와 정부가 승계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과 정보가 전달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부분이 아직 취약하다”며 “현 정부나 다음 정부에 도움이 되기 위해 회고록을 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친박계가 박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반대 부분과 관련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데 대해서는 “세종시와 관련한 부분에 대해 논란이 되는 문장이 한 줄 나올 뿐이고, 친박 일부에서 그런 의구심(이 전 대통령이 정운찬 대망론을 위해 세종시 수정안을 제시했다)이 있었다는 정도의 언급”이라고 해명했다.
○정치적 논란 불러온 前 대통령 회고록
역대 대통령의 회고록은 대부분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다.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과의 숨겨진 일화가 회고록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에게 3000억원대 대선자금을 제공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 舅?통해 노 전 대통령을 “정보정치를 통해 나를 견제하는 데만 골몰했다”고 비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