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연말정산 왜 시끄럽나…정부 '부(負)의 재테크' 외면

입력 2015-01-26 00:00
세금 줄여 효율적 자산관리
금융회사 '뉴 머니' 잡아야 생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올 들어 대내외 금융환경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금리인상을 단행할 예정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뒤늦은 양적 완화 발표 이후 유로화 가치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금융 산업에서는 핀테크(fintech) 바람이 거세다. 예금금리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속속 진입하면서 재테크 분야도 비상이 걸렸다.

작년 6월 ECB는 ‘마이너스 예금 금리제’를 발표했다. 은행에 예금해도 이자를 받기보다 보관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파격적인 이 제도를 ECB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은 국민과 기업이 예금하지 말고 그대로 소비나 투자를 하면 경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이후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예금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한국도 작년 8월 이후 두 차례 정책금리를 인하했다. 경기부양 목적을 달성하려면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금리인 대출금리가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 비용금리인 예금금리가 더 빨리 내려가 1년 만기 예금금리는 1%대까지 진입했다. 올 상반기에 한 차례 더 정책금리를 내린다면 가처분 예금금리는 0%대, 실질 예금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금금리가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진다면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에 저축할 유인이 없어진다. 나라 안팎으로 ‘저축 무용론’이 거세게 부는 배경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도 지금처럼 돈이 남아돌면 ‘절약의 역설(saving’s paradox)’ 시대에 접어든다. 이때 저축하면 오히려 경기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저축 무용론’이 더 힘을 얻고 있다.

금융회사는 은행에서 이탈되는 돈, 즉 ‘뉴 머니’를 잡아야 한다. 개인도 이제는 저축이 아니라 투자해야 재산을 늘릴 수 있다. 투자란 위험을 감수해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모든 것이 보이는 ‘증강현실’ 시대에서는 위험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종전만큼 수익이 나지 않는다. 금융상품 수익률의 하향 평준화 현상이다.

앞으로 ‘정(正)의 재테크’에서 ‘부(負)의 재테크’가 뜰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는 남아도는 돈을 굴려 재산을 늘리는 종전의 재테크 개념이다. 후자는 자신의 재산을 확대하는 데 들어가는 수수료, 세금을 줄여 손에 들어오는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재테크를 말한다. 정부가 국민 편에서 연말정산을 잘해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종 연금과 보험 등이 대표적인 ‘부의 재테크’ 금융상품이다. 수익도 중요한 목표이긴 하지만 50년 이상 길어진 은퇴 이후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데 주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기대 수익이 예상된다면 부채를 잘 활용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부채부터 우선적으로 갚아야 한다.

남아도는 돈을 투자해 수익을 내고 각종 비용을 줄이는 것이 ‘자산관리’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자산관리에 주력한 지 오래됐다. 국내에서도 자산관리에 일찍부터 눈을 떠 이제는 탄탄한 수익기반을 갖춰 가는 금융전문그룹이 있으나 대부분 국내 금융회사는 올해부터 부쩍 자산관리를 표방하고 있다.

자산관리를 표방한다 하더라도 곧바로 금융회사의 수익과 고객의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지금을 ‘뉴 노멀’ 시대라 부른다. 종전의 이론과 관행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기치 못한 상황, 즉 ‘노이즈(noise)’가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경험이 축적돼 있어야 이 현상을 제대로 파악해 고객을 올바른 방향으로 안내할 수 있다.

설령 스카우트 등을 통해 단기간에 자산관리 인력을 갖춰다 하더라도 글로벌 경험이 없다면 금융회사나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수익을 낼 수 없다. 통계기법상 요인 분석을 통해 주가, 금리, 환율, 경우에 따라서는 부동산 가격 등 자산관리 수익변수의 결정력을 따져보면 한국은 글로벌 요인이 80%, 우리 요인이 20% 정도 좌우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와 한국 경제가 동조화 현상을 보일 때는 우리 경제만 생각해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주더라도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탈동조화 현상을 보일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우리 경제만 감안해 고객의 자산을 관리해주면 커다란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S’자형 경제발전론으로 볼 때 우리 경제는 성장률이 4% 이상 올라가기는 힘든 여건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직관력(insight)과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글로벌 재테크 수단을 적기에 우리 국민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망(network)을 구축해야 제대로 된 자산관리가 가능하다. 글로벌 자산관리가 가능한 금융회사만이 고객으로부터 환영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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