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스크린보다 진한 감동

입력 2014-12-02 21:03
수정 2014-12-03 03:45
공연 현장에서 맡는 '사람 냄새'
아이들에게 자주 느끼게 했으면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


지난주 영화 ‘모던발레 채플린’ 시사회에 초대받아 영화를 봤다. 클래식발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많을 텐데 모던발레를 영화관에 와서 보는 관객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다. 영화 감상 후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지휘자로 활동 중인 음악전문가가 나와 영화의 배경음악에 대해 설명해줬다. 모던발레가 등장하기까지의 역사도 소개했다.

국내 한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백조의 호수’ 등 유명한 발레공연을 영화로 만든 예술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다. 발레를 직접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으로 상영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기획자가 순수예술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이런 발상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돈은 안되지만 예술적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발레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준다는 것 자체가 발레인으로서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공연 대신 영상을 통해 공연실황을 상영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호두까기인형’ 발레공연을 영상화해 지방 공연장에서 상영하고 있다. 공연을 직접 보는 것보다 가격이 싸다. 물론 공연장이 없는 산간벽지나 시골의 마을회관에서 멋진 발레공연을 영상으로라도 만나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직접 보는 공연이 아닌 스크린 영상으로 발레를 감상하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현장의 생동감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연간 운영비 중 공연사업수익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단체, 공연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업계 생태계에까지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히 검토한 뒤 진행했으면 한다.

지난봄 서울발레시어터(SBT)가 창작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공연했을 때 일이다. 지인 한 분이 로열석 2매를 예매하고도 객석 맨 뒷줄에 아이를 안고 앉아 있었다. 아이가 27개월밖에 안 됐지만 공연을 너무 보여주고 싶어 왔고, 혹시라도 아이가 공연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데리고 나가려고 뒷줄에 앉아 있는 것이라 했다. 우려와 달리 아이가 공연 내내 집중을 잘하고 열심히 봤다며 정말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동화책과 TV, 각종 스마트기기 등을 통해 무수히 많은 캐릭터를 만난다. 그러나 실제 마주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눈앞에서 캐릭터가 움직이고 무대세트, 조명, 음악이 살아 숨쉬는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면 큰 행복감과 감동을 받게 된다. 아무리 모든 게 첨단화돼간다고 해도 나의 소박한 바람은 공연장에서만이라도 함께 사람 냄새를 맡으며 ‘살아 숨쉬는 우리’가 되는 것이다.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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