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품목 너무 넓게 잡아 논란
협상실무자 "대외경제장관회의 결정…못 건드려
줄 게 없으니 車부문 공세 못 펴"
농축산당국 "오렌지 들어오면 감귤 타격
기니아새 풀리면 양계농민 피해"
[ 김재후/심성미/조진형 기자 ]
정부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국내에서 거의 생산이 되지 않는 농·축산물까지 과도하게 보호하려다 자동차 부품 등 상품 분야의 중국 측 개방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농업 부문의 민감성을 의식한 정부 고위층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지만 협상 실무팀 내부에서조차 “너무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실제 자동차는 물론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주요 자동차 부품 등이 대거 초민감품목으로 편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당국 한 관계자는 12일 “이번 FTA 협상을 돌이켜보면 우리 측이 농축산물 분야에 초민감 또는 민감품목을 지나치게 폭넓게 고정시켜 놓는 바람에 실제 협상 여지가 넓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이란 게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건데, 중국이 개방을 요구하는 농·축산물 분야에서 (우리가) 줄 게 없으니 결과적으로 한국이 중국 측에 개방을 원한 공산품에서 얻을 수 있는 걸 얻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 FTA 발효 뒤에도 관세를 낮추지 않아도 되는 초민감품목에는 얌 산양고기 면양고기 토끼고기 오렌지 멜론 키위 등 한국에서 생산량이 극히 미미하거나 아예 생산되지 않는 상품들이 들어가 있다. 얌은 다오스코레아종의 식물이다.
관세를 15년 또는 20년에 걸쳐천천히 늦추도록 돼있는 민감품목 선정은 더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기니아새 말고기 칠면조고기 등이 포함돼 있는데, 기니아새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타조과의 조류다. 이런 종류의 품목이 300여개에 이른다는 전언이다. 농산물의 경우 총 1611개 품목 가운데 한·중 FTA에서 초민감으로 분류된 품목은 581개, 민감품목은 441개로 확정됐다. 이처럼 한국이 1000개가 넘는 농산물을 민감품목 이상으로 묶어버리면서 중국 측도 그만한 숫자의 공산품 개방 빗장을 꽁꽁 걸어 잠갔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 참여한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 베이징에서 막판 실무협상을 벌이는 도중에 서울에서 보내온 농·축산 분야의 민감 또는 초민감품목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며 “생소한 이름들이 많았고 생산량도 적은 것들이 많아 관련 부처에 확인했더니 부처 의견이 아니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된 맨데이트(의무사항)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어떤 경로인지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경제장관들이 모여서 민감·초민감품목을 결정했다는 얘기다.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은 훈령과 같은 효력을 갖고 있어 실무자들이 재량을 부릴 여지가 없다.
이 같은 상황을 전해 들은 경제계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임원은 “민감·초민감품목의 경우 얼핏 봐도 국내 시장성이 없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며 “정부가 정치적 민감성에 함몰돼 제조업 분야의 이득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으로 판단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 나지 않는 품목이라도 해도 미래에 파급효과가 크다고 판단하면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다”며 “예를 들어 오렌지 같은 경우 감귤을 대체할 수 있고, 기니아새 등도 닭과 비슷해 양계 농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토끼고기도 국내 생산량이 미미하지만 향후 개방되면 예기치 못하게 시장이 커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 민감·초민감품목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율을 일반 품목보다 높은 수준으로 책정하는 품목. 민감품목에 대해선 15년 또는 20년에 걸쳐 관세를 낮추고 초민감품목은 관세 철폐 제외, 부분 감축 등의 조치를 한다.
세종=김재후/심성미/조진형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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