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門 열기 힘든 명문대생·유학파, 中門으로 '우르르'

입력 2014-11-06 20:49
인사이드 스토리

高스펙 인재, 중견기업 대거 지원
세아상역, 공채 경쟁률 300대 1
휴온스, 서울대 약대 출신들 응시
동아쏘시오, 영업직에 석사 몰려


[ 김정은/김형호 기자 ]
#1. 내년 2월 서울대 사회과학대를 졸업하는 B씨는 지난해 대기업 공채에서 모두 떨어지고 졸업을 미뤘다. 올해 B씨는 중견기업 D사에 원서를 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2.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K씨는 최근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인 P사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미국에서 현지 기업과 삼성, LG 등에 취직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국내 명문대와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들이 중견기업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기업과 은행 등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장의 취업 문턱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공기업과 증권회사들이 채용 규모를 줄인 것도 중견기업의 인재 채용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경영학 석사 등 경쟁률 수백 대 1

지난주 채용박람회를 연 중견제약사 휴온스 인사담당자들은 깜짝 놀랐다. 서울대 약대 출신 지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방대, 수도권대가 주를 이뤘는데 최근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출신이 몰려 다들 놀랐다”고 말했다. 제약회사 동아쏘시오그룹 신입사원 공채에서는 영업직 지원자 중 경영학 석사학위 소지자가 36명이나 됐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영업직군은 스펙이 좋은 지원자가 드문데 올해는 예년에 비해 학력과 출신 대학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건자재와 중고 자동차 사업을 하는 동화기업의 권동형 상무는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대거 지원해 올해는 과거에 비해 사람을 뽑는 게 훨씬 수월했다”고 말했다. 동화기업의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는 28명을 뽑는 데 5000명이나 지원했다. 경쟁률이 수백 대 1에 달하는 중견기업은 동화기업뿐만이 아니다. 섬유업체 세아상역의 신입 공채에는 6000명이 몰렸다. 채용 예정인원은 20~30명이다.

중견기업 H사의 경우 지난해 공채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 600명가량 지원했고, 올해는 그 숫자가 900명에 육박했다. 이 회사는 100명을 뽑는데 지원자는 1만3000명에 이르렀다. 회사 관계자는 "대기업 입사가 어려워진 것과 함께 중견기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고학력자들이 중견기업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경력사원 공채도 쉬워져

경력직 시장에서도 중견기업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최근 대기업과 증권사 등이 인원을 줄임에 따라 중견기업으로 넘어오는 인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용품업체 해피랜드의 인사팀 관계자는 “최근 경력직 지원자 이력서를 보면 대기업 출신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실제 카메라 모듈 검사장비 업체 하이비젼시스템은 최근 미국 UC샌디에이고 졸업 후 우리투자증권에 근무한 경력자를 IR담당 과장으로 영입했다.

이처럼 중견기업의 인재 채용이 수월해졌지만 인문계 분야에 국한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직인 이공계 분야는 여전히 지원자들의 ‘콧대’가 높다는 것. 페인트 제조회사 노루페인트는 지난달 신입 3명을 채용했으나 기대했던 것만큼의 ‘특수’는 없었다. 인사팀 관계자는 “인문계 출신들이 지원하는 관리직군은 눈을 낮춰서라도 일단 취업하자는 분위기인 데 반해 이공계열 학생들은 원하는 대기업의 채용공고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설명했다.

또 명문대 출신이 지원해도 선발하지 않는다는 중견기업도 있다. C사 관계자는 “과거 명문대 출신들을 많이 뽑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나간 경험이 있어 원서가 들어와도 뽑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고 했다.

한편 중견기업에 인재가 몰리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인력 부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현장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김정은/김형호 기자 likesmile@hanky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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