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엔低 날개단 日 혁신전략에 대비해야

입력 2014-10-19 22:33
"차세대 제품·공정 개발 올인하는 日
엔저 활용, 경쟁판도 뒤엎자는 전략
韓, 제품 및 사업모델 혁신 꾀해야"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엔저(低)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농수산물의 대일(對日) 수출이 어려워진 데다 중국의 수입 수요 둔화까지 겹쳐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수익부진에 허덕이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자동차, 화학, 철강, 전기전자 등 그동안 대일 우위를 톡톡히 누렸던 제품 분야의 한·일 재역전 현상이 속출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엔저 장기화 현상의 의미와 일본 기업의 전략 방향에 맞게 대비책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엔저는 과거 엔저기와 달리 일본의 수출이 확대되지 않아 무역적자가 쌓이면서 엔화가치 하방압력이 수그러들지 않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수출은 올 들어 8월까지 물량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0.4% 감소하고 미국 달러화로 계산한 수출금액도 같은 기간 3.9% 줄었다. 엔저 효과로 인해 엔화로 계산한 수출 금액은 2.8% 늘었으나 2013년 연간 수출증가율(엔화 계산 기준) 9.5%에서 크게 둔화된 상황이다. 일본 자동차산업도 수익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 1~7월의 수출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2% 감소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수출이 확대되지 않은 것은 일본 기업이 이번 엔저를 활용해 수출 가격을 인하하기보다 동결하면서 수익 확대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달러화 등 계약통화 기준으로 계산한 일본의 수출 물가는 2012년 9월에서 2014년 8월까지 제조업 평균으로 2.6% 하락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엔화는 24% 절하됐기 때문에 일본 기업은 엔저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의 11% 정도밖에 수출 가격에 반영하지 않은 셈이다.

일본 기업들은 엔고(高)기에 많은 제품의 생산을 해외로 이전, 일본 공장에서는 가격탄력성이 낮고 소득탄력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수요가 확대돼야 수출이 늘어나는 구조가 됐다. 예를 들면 고급차인 렉서스를 수출하는 도요타의 일본 본사 공장으로서는 가격을 낮추고 매출을 늘리기가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또 일본 기업은 리먼쇼크 이후의 엔고 과정에서 수익을 희생하면서 수출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엔저로 수출 가격을 크게 인하할 경우 덤핑 제소를 받게 되고 오히려 불리한 입장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도 할 것이다.

일본 기업은 이번 엔저를 활용해 수익을 늘리고 일본 내 공장의 고부가가치화, 해외공장의 확충에 주력하면서 일본 기업의 전체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어 한국 기업으로서는 일본 기업 해외공장과의 경쟁 격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일본 기업은 이번 엔저를 활용해 차세대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혁신전략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 제품 분야에서 단순하게 생산능력을 확충하는 것보다 차세대 제품기술로 경쟁의 판도를 바꾸려는 전략인 것이다. 도요타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차세대 그린카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연비를 더욱 개선하는 데 주력하는 한편 차차세대 제품으로서 연료전지차를 2015년에 시판할 방침이다. 소재 분야에서도 탄소섬유 등 신소재나 신소재 복합소재의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석유화학 분야에서는 기존 범용제품 생산능력을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차세대 신공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기존 제품 분야에서 일본 기업의 해외공장이나 중국 기업 등 신흥국과의 경쟁에서 차별화된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현금흐름의 확대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또 경쟁 판도를 흔들려는 일본 기업의 차세대 전략에 대항할 제품 및 비즈니스 모델 혁신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다.

이지평 <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jplee@lgeri.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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