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창조경제, 조급해 하지 말라

입력 2014-10-06 00:52
차병석 IT과학부장 chabs@hankyung.com


미래창조과학부가 요즘 가장 열심히 하는 일 중 하나가 창조경제 성과 홍보다. ‘전 국민의 아이디어 플랫폼’이라며 만든 창조경제타운 웹사이트 개설 1주년을 맞아서다. 성공사례집을 내고, 기자 설명회도 열었다. 국민 누구나 아이디어만 올리면 전문가가 붙어서 사업화를 도와준다는 창조경제타운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공무원들이 성과 홍보에 법석을 떠는 이유인지 모른다.

가시적 성과에 목매는 정부

‘누적 방문자 수 100만명, 아이디어 제안 1만4000건, 사업화 지원 1185건.’ 지난 1년간 창조경제타운의 외형적 실적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성공 사례집의 알맹이를 뜯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뚜껑을 열 때마다 표시된 요일이 바뀌어 약 먹는 걸 잊지 않게 해주는 약병, 미생물을 이용한 음식물 처리기, 쓰레기 유입이나 악취를 차단하는 빗물받이 등…. 이런 아이디어 상품이나 발명품이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라면 왠지 허탈하다. 최양희 미래부 장관이 최근 언론사 부장들을 모아놓고 소개한 창조경제 사례 아홉 건도 그렇다. 이 중 일곱 건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에 창업했거나 성공한 기업 이야기였다. ‘얼마나 급했으면…’이란 생각마저 든다.

모두가 창조경제의 성과를 서둘러 보여주려는 조급증의 결과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주창한 지 2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창조경제가 뭐냐’는 질문이 나오는 터라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강박감이 엿보인다. 조급함은 정부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밀어붙인 데서도 보인다. 17개 시·도를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대기업에 부랴부랴 할당하고, 각 지역의 창업을 지원하라는 건 관료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최양희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창조경제의 롤모델로 미국의 구글을 들었다. 구글이 과연 창조경제타운 같은 정부 지원을 받고, 제너럴모터스(GM)와 같은 대기업의 도움을 받았던가. 구글이야말로 창의적 아이디어만 갖고 자유로운 기업 여건에서 탄생한 혁신 기업이다.

정부는 구글 같은 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만 만들면 된다. 그게 바로 교육 개혁과 규제 혁파다.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있게 교육제도를 바꾸고, 기업하기 좋은 토양을 위해 규제를 없애야 한다. 다른 나라가 초등학생부터 소프트웨어를 가르칠 때 우린 바느질이나 가르치고, 대통령이 끝장토론을 해야 공무원들이 겨우 규제 푸는 시늉을 하는 나라에선 구글 같은 회사가 나올 수 없다.

물론 정부가 창조경제의 성과를 하루라도 빨리 내려고 동분서주하는 걸 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너무 서둘다 보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교육 개혁과 규제 혁파가 우선

창조경제타운 사이트에도 적혀 있듯이 창조경제는 ‘창의적 아이디어가 성장 엔진이 되는 경제’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경제다. 이런 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면 산업화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을 깨는 혁신이 필수적이다.

혁신은 어디에서 나오나. 슘페터의 말처럼 ‘창조적 파괴’에서 나온다. 창조경제도 구(舊) 체제에 대한 창조적 파괴에서 비롯된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을 혁신하고 새로운 서비스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설픈 성과 홍보보다 정부가 지금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차병석 IT과학부장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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