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치적 타협물' 폄훼…韓·日 갈등 격화

입력 2014-06-20 20:58
수정 2014-06-21 03:55
日 "고노담화 작성 때 한국과 문안 조정" 발표 속셈은

日정부 검증결과 국회 보고 "담화 수정하지는 않겠다"
"피해자 상처 다시 건드려" 정부, 강력대응 방침 천명


[ 전예진 기자 ] 일본이 20일 ‘고노담화 검증 보고서’ 발표를 강행하면서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고노담화는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것을 말한다. 일본 정부는 고노담화를 작성한 경위를 조사한 이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담화 문구를 수정하도록 개입했다고 발표했다. 문안을 고친 부분은 위안소 설치에 일본군의 관여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언급한 내용이다. 일본 정부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위안부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고노담화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것이어서 한·일 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극우파 달래기용”

보고서에 따르면 고노담화 초안에는 위안부를 모집한 주체가 ‘군이 아닌 군의 의향을 수용한 업자’로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군 또는 군의 지시를 받은 업자’로 표기하자고 요구했고 결국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로 수정됐다. 또 군 위안부 모집의 강제성을 명시하라는 한국 측 요청에 따라 담화에 “본인들의 의사에 반(反)하여 (모집이) 이뤄졌다”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적었다. 고노담화를 작성하는 데 기초가 된 사료의 객관성과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도 담겼다. 보고서는 고노담화를 작성할 때 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청취조사를 한 뒤 사후 이를 입증할 별도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취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역사 연구와 평가는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겠다”며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를 극우파 달래기용으로 평가하고 있다. 아리미츠 겐 일본 전후보상네트워크 대표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우파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비공식 의견 제시했던 것뿐”

한국 정부는 강력 반발했다.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검증이라는 구실 하에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다시 건드리는 행위는 유엔 등 국제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교 교섭 내용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외교적 결례라고 정부 관계자는 지적했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이 우리 측에 사전 공개한 것보다 보고서의 수위가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도 “역사를 뒤집으려는 그 어떤 시도도 인심을 얻을 수 없으며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우리 정부는 당시 진상 규명은 양국 간 교섭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견지했으며, 일본 측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시했던 것뿐”이라고 밝혔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