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생태계'가 키운 히든챔피언] 中企 부족한 도금기술 채워주고…삼성 TV '명품 프레임' 얻다

입력 2014-04-07 20:59
수정 2014-04-08 03:50
(1) 삼성전자 협력사 파버나인

삼성과 손잡고 '윈윈'
日 기술자까지 불러 지원…2년만에 매출 4배 급증

공장 생산성도 '쑥쑥'
자재관리 등 공정 효율화…70억 원가절감 효과 거둬


[ 박영태 기자 ]
2011년 6월, 다섯 명의 심사위원 앞에 선 중소 도금업체 파버나인의 이제훈 사장 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조 재무 경영 시스템 기술 등 42개 심사항목을 따지는 심사위원들의 깐깐한 질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쌓았다고 자부해왔지만 1박2일에 걸친 삼성전자의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사’ 심사 과정에서 어수룩한 회사 실상이 발가벗겨졌다는 생각에 참담함마저 느껴졌다. ‘탈락’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래도 이 사장은 이를 악물었다. “구태의연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내 도금산업을 최첨단 산업으로 탈바꿈시켜 글로벌 히든챔피언이 꼭 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두 달 뒤 삼성전자는 이 사장의 ‘간절한 호소’에 화답했다. 삼성전자는 뿌리산업을 키우려는 방침에 따라 자격이 다소 미흡한 파버나인을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사로 선정했다.

파버나인은 삼성전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세계 최초로 85인치 이상 프리미엄급 TV용 알루미늄 프레임을 개발해냈고 작년 한 해에만 매출이 전년보다 158% 급증하는 성과를 거뒀다. 파버나인은 삼성전자가 2011년부터 56개 협력사에 2035억원을 들여 자금·기술·인력 등 경영 전반에 걸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 글로벌 강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삼성 덕에 ‘기술 장벽’ 넘다

인천 남동인더스파크에 있는 직원 450명의 파버나인은 TV용 메탈 프레임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이다. 삼성전자가 프리미엄급 TV의 메탈 외장재 상당수를 파버나인에서 조달하는 이유다.

1997년 설립된 파버나인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기술력 있는 도금 회사’ 정도로 통했다. 매출도 300억원 안팎에 그쳤다.

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아노다이징(알루미늄 같은 금속 표면을 산화시켜 부식을 방지하는 표면처리 공법) 시스템이다. 2000년대 초 중국 업체들의 추격 때문에 단순한 표면처리 기술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 정밀하면서도 질감이 뛰어난 표면처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신기술 도입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균일한 품질의 양산 기술이 확보되지 않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삼성전자는 이런 고민을 풀어주기 위해 일본 최고의 도금 기술자를 세 차례나 초청해 기술을 전수받도록 배려했다. 결국 파버나인은 지난해 초 기존에 없던 신가공 공법과 설비를 개발, 세계 최초로 85인치 이상 초대형 TV용 프레임 양산에 성공했다.

이 사장은 “차별화된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품질의 친환경 외장재 제조에 도전해왔는데 삼성전자 덕분에 그 꿈을 예상보다 빨리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80도 바뀐 공장…생산성 껑충

어렵사리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사가 된 2011년 9월부터 파버나인은 회사 전반에 걸쳐 개조작업을 시작했다. 18명의 분야별 전문가들은 파버나인에 253개의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방문, 제조 경영 재무 기술 시스템 등 전 분야에 걸친 개선과제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조언했다. 이렇게 해서 2년여간 거둔 원가절감 효과만 70억원에 이른다.

골칫거리였던 자재와 재고 관리는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말끔히 해결됐다. 1주일 단위로 자재 관리가 이뤄지도록 설계돼 수개월 동안 자재가 방치되는 일이 없어졌다. △공정 자동화 사례 벤치마킹 △생산라인 구조 변경 △물류 프로세스 개선 △자재 관리 표준화 △원자재 공급 시스템 개선 등의 성과도 거뒀다. 수작업에 의존하던 폴리싱 작업(도금할 부분을 연마해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라인별 하루 생산량을 60개에서 400개로 크게 높인 게 대표적이다.

이 사장은 “과거 당연하게 생각했던 작업도 발상을 바꾸면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삼성전자에서 전수받은 노하우를 2·3차 협력사에 알려줘 대·중소기업 상생의 성공적인 모범 사례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인천=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