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주당 '역린' 건드린 안철수

입력 2014-03-19 20:30
수정 2014-03-20 04:18
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


[ 이호기 기자 ] 국회에 있는 민주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대변인실 등 주요 사무실에는 어김없이 김대중(DJ)·노무현(盧) 두 전직 대통령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현직 대통령 사진만 걸어두는 새누리당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됐는데도 사후에도 변함없는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로서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18일 오전 야권 통합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 초안이 공개되자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초안에는 현 민주당 강령에 포함돼 있는 ‘6·15(DJ), 10·4(盧) 남북공동선언 등 남북한의 기존 합의를 존중하고 계승한다’는 표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호남, 친노 등 계파를 초월해 민주당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이 나서서 초안 전문을 공개하고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뺀 것이지 6·15, 10·4 선언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고 강조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금 대변인의 해명은 새정치연합 측이 6·15와 10·4의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뉘앙스로 해석돼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결국 이튿날인 19일 오전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6·15와 10·4 선언의 정신은 우리가 발전적으로 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라며 진화에 나선 뒤에야 간신히 잦아들었다. 정강·정책에도 해당 문구를 명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실 6·15는 이후 터진 ‘대북 송금사건’으로 적잖이 빛이 바랬고 10·4도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분명 4·19혁명이나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과 달리 현실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통합신당이 가급적 이 같은 불필요한 논란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차제에 정리하고 가자던 안 위원장 측의 바람은 그렇게 꺾였다. 이래서야 과연 새정치연합이 이념 갈등을 넘어 합리적인 중도 보수층으로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호기 정치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