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장관회의가 오는 20일로 연기되면서 민관합동의 대규모 행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초 어제로 예정하고 총리실이 준비를 해왔으나 청와대가 몇 가지 주문을 내놓으면서 형식과 내용이 크게 변경됐다고 한다. 기업인을 포함해 민간 전문가도 대거 초청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더욱 관심 가는 것은 규제문제에 관한 한 끝장토론을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지다. 이번에야말로 현장의 목소리와 수요자의 진정한 요구가 제대로 수렴되길 바란다.
비단 청와대만이 아니었다. 장관쯤 행차하는 현장회의라도 기획되면 관료들은 시나리오 짜기에 바빴다. 진짜 토론을 하자면서도 발언자 순서 정하고, 민원인이 눈치 없이 분위기 망치는 말이라도 마구 늘어놓지나 않을까봐 미리부터 듣고 또 들었다. 어떻게든 ‘그림’ 좋아보이는 쪽에 장관이 자리 잡았고, 엄선한 현장의 관계자들은 엑스트라처럼 그 주변에 세워졌다. 행사장에 거둥한 장·차관이 은근히 폼나면서 행사장 분위기 좋게 연출하는 솜씨들은 영화감독의 직업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수십명 또는 그 이상으로 행사가 커질수록 더 그렇고 방송 카메라가 출동하는 날엔 더욱 유난을 떨었다. 의전이 매끄러울수록 언어는 겉돌기 시작한다.
규제혁파 회의까지 이래선 곤란하다. 마라톤 회의가 되더라도 이번에 제대로 한번 본질을 토론하고 원칙을 재정립하자는 게 대통령이 끝장토론을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국민들에게 비칠 모양새나 다듬어서는 안 된다. 갑자기 ‘어전회의’가 됐으니 풀까 말까 좌고우면해온 묵은 민원 한두 개를 각 부처에 급히 수소문하는 식이어선 결과가 뻔해진다. 당장의 속도보다도 규제의 근본 문제를 논의하고 방향부터 정립해야 한다. 그러자면 사례도 중요하지만 분석은 더 중요하다. 좀 어수선해보이면 어떻고, 음성이 높아지는 난상토론이어도 좋다. 3시간이든 5시간이든 온국민과 100만 공무원이 다 듣도록 아예 생중계 회의를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