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S, 美 36조달러로 전체의 3분의 1 차지
공공부문 부채는 80%나 늘어 43조달러
인플레로 금리 인상 땐 시장혼란 우려
[ 뉴욕=유창재 기자 ]
전 세계 정부와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빌린 돈이 지난해 100조달러로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중반의 70조달러에 비해 40%나 늘어났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가 경기 부양에 사용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이자가 쌀 때 돈을 빌리기 위해 공격적으로 채권을 발행했다. 이에 따라 금리가 급격히 오를 경우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면서 글로벌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 빚의 3분의 1
국제결제은행(BIS)은 9일(현지시간) 내놓은 분기보고서에서 지난해 9월 현재 정부와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 잔액이 100조달러에 달했다고 밝혔다. 은행 대출을 제외한 수치다. 특히 각국 중앙 및 지방 정부가 발행한 정부 채권은 43조달러로 2007년에 비해 80%나 늘었다. 비금융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도 비슷한 속도로 증가했다. 다만 금융회사들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차입 축소에 나서면서 채권 발행 속도가 둔화됐다.
채권시장 규모가 급격히 커진 건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BIS는 분석했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면서 대출 대신 채권시장에서 필요한 돈을 조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아 채권으로 몰린 것도 채권시장이 급성장한 요인 중 하나다.
그런데다 경기도 부양해야 하고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융사들도 구제해야 하는 정부의 자금조달 수요가 겹치면서 자연히 채권 발행액이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 연방 정부 부채는 현재 17조달러에 달한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발행한 채권까지 합치면 36조달러를 넘어선다. 전 세계 빚의 3분의 1 이상을 미국이 지고 있는 셈이다.
BIS에 따르면 한국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빚이 22%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빚이 가장 많이 늘어난 국가는 인도로 같은 기간 국채와 회사채 잔액이 85%나 불었다.
○금리 급상승 땐 금융시장 재앙
채권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 주체들의 빚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금리가 급격히 오를 경우 정부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수익이 줄어들고 정부는 더 이상 시장에서 싸게 돈을 빌릴 수 없게 돼 거시 경제와 금융 시장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제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우다. 지난 7일 미국 노동부가 예상을 웃도는 2월 고용지표를 발표하자 미국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연 2.790%로 치솟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말에는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3%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급격한 인플레이션이다.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빠르게 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물가상승률이 낮게 유지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곧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CNBC는 이날 미국 고용시장이 회복되면서 곧 임금이 오를 가능성이 있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파로 농산물 등 상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그동안 채권에 투자해온 투자자들의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BIS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각국의 국채 수익률이 3%포인트 오를 경우 미국 국채 투자자들은 1조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8%에 해당하는 규모다.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의 국채 투자자들은 각각 GDP의 15~35%에 달하는 손실을 입을 것으로 BIS는 전망했다.
○금융시장 글로벌화는 주춤
한편 전체 채권시장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국제 채권시장은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의 정부나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이 줄었다는 뜻이다. BIS에 따르면 국가 간 채권 보유액이 전체 채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9%에서 2012년 말 26%로 줄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이 비중이 8%포인트 늘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제 금융시장의 통합 추세가 급격히 역전된 것이라고 BIS는 분석했다.
다만 미국 채권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수요는 여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유럽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투자자들의 수는 급격히 줄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