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득 4만弗 위한 기업채용 방식은…

입력 2014-03-03 20:33
수정 2014-03-04 05:01
"인재 채용방식은 개별 기업의 몫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참견하면
인적 경쟁력 키울 기회 빼앗는 것"

박오수 < 서울대 교수·경영학·객원논설위원 ospark@snu.ac.kr >


기업들이 좋은 인재를 뽑겠다고 다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기업이 존재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름대로 채용방식을 만들어 우수 인재를 뽑는 일은 존중돼야 마땅하다. 기업이 사람을 채용하고 육성하는 일은 넓게 보면 해당 기업 자체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대단히 유익한 일이다. 세계적인 기업 중에는 ‘보통 사람들을 위대하게’ 만든 인사관리를 실천한 기업이 많다. 신입사원 채용 당시의 ‘스펙’보다 기본 소양과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아 각기 직무에 필요한 능력계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회사가 성공한 것이다.

삼성 역시 ‘열린 채용’을 표방하며 지역·대학·전공·학력·성별로 폭넓게 인재를 선발하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채용 후 지속적인 교육과 능력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을 세계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해왔다. 이런 인재육성 정책이 오늘의 삼성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이 지난 1월 발표했던 ‘대학 총장 추천제’는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했다. 매년 20여만명의 대학생이 삼성에 입사하기 위해 지원하는 데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고 일부 대졸자는 총장 추천으로 서류전형을 대신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대학별 총장추천 인원수를 놓고 민간기업이 대학을 서열화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총장 추천제는 곧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선진국 기업들이 각자 특성에 맞는 채용방식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기업의 독특한 채용방식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일은 없다. 급기야는 정치권까지 나서 민간기업의 채용방식을 뒤엎어버리는 한국과는 천양지차인 것이다.

삼성은 곧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에 나선다. 서류심사방법 개선, SSAT 응시횟수 조절 등 총장 추천제를 대신할 수 있는 단기적 보완책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단기적 보완책이 아닌 ‘통 큰’ 인사정책을 수립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대학입시제도가 고교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듯이 삼성의 신입사원 채용방식이 대학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 또한 단순히 ‘스펙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아님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장에 써먹을 수 있는 실무지식이나 응용기술이 아니라 미래의 산업인력이 되는 데 필요한 인간 됨됨이와 소양을 함양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소득 4만달러는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수출증대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시민의식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아야 한다. 주요 선진국 국민의 시민의식 수준을 보면 아직 우리가 크게 부족함을 알 수 있다. 이제 기업들은 사원의 생산성 향상만 강조할 게 아니라 시민의식 선도란 사회적 역할도 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만큼 국민의식 선진화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20여년 전 삼성이 국제화를 위해 여러 전략을 구상할 때 현재의 ‘지역전문가’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투자해 오늘날 3000명 이상의 지역전문가를 키웠고, 이들은 세계 전역의 시장을 개척하는 선봉장이 됐다. 이는 삼성을 넘어 한국의 세계화에 힘이 됐다. 이렇듯 삼성은 삼성 하나만을 생각하는 인사가 아닌, 국내 기업 인사관리 방식을 선도하고 국가차원의 인재육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통 크고 장기적인’ 채용정책 수립에 적극 투자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삼성의 이런 노력에 박수를 보내줄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의 신입사원 채용방식까지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면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는 요원한 일이다.

박오수 < 서울대 교수·경영학·객원논설위원 ospark@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