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강지연 기자 ]
서울 역삼동 강남파이낸스센터에선 매일 수조원 대의 자산이 굴러간다. 초고액 자산가(VVIP)를 대상으로 하는 대형 증권사들의 프라이빗뱅킹(PB) 영업지점이 나란히 입주해 있기 때문이다.
1층에는 미래에셋증권이 자리를 잡았고, 14층과 15층엔 각각 우리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있다. 20층엔 신한 PWM스타센터가, 25층엔 삼성증권이 있다. 이곳 5개 지점에서 운용되는 자산 규모만 6조8000억 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는 “전체에서 이곳 지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밝힐 수 없지만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등 지방 자산가들도 일부러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강남 고위자산가들을 상대로 한다는 이미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강남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
증권사의 돈 맥(脈)이 서울 강남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한경닷컴이 대형증권사 5곳의 서울 내 ‘VIP 지점’ 위치를 집계한 결과, 강남구에 모두 37개가 몰려 있어 ‘강남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우리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삼성증권, KDB대우증권이 운영하고 있는 66개 VIP지점 중 절반 이상이 강남구에 위치해 있다.
2위는 중구(11개). 중구에만 3개 PB센터를 운영 중인 우리투자증권 관계자는 “강남에 실질적인 돈이 집중된다면 중구는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며 “정치, 행정 중심지 이미지가 있어 강북 VVIP PB센터의 거점 역할을 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초구(5개), 송파구(4개), 양천구와 영등포구(3개) 순으로 나타났다. 광진구와 구로구, 종로구에도 1개씩 위치했다. 용산구를 비롯해 동작구, 서대문구, 성동구 등 16개 구에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부가 집중되고 있는 용산구 등에도 PB센터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증권가 구조조정으로 계획을 접었다”며 “대신 기존 PB센터 관리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강남을 중심으로 한 PB센터는 불황도 빗겨간 무풍지대로 증권사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증권업계 불황에도 이렇다 할 부침 없이 평균 자산운용 규모가 유지되고 있다.
서재연 KDB대우증권 PB클래스 갤러리아 이사는 “저금리 기조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거액 자산가들의 규모는 오히려 꾸준히 늘고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등록은 3000만원 이상 자산가부터 가능하지만 대부분 3~5억 원 또는 10억 원 이상 자산가들이 많다고.
서 이사는 “최근 강북권에도 시선이 가는 분위기이지만 여전히 PB는 강남이 강세”라며 대우증권에서 가장 청담점은 자산 운용 규모가 3조 원 정도“라고 밝혔다.
‘강남 부자 공 들이기’는 외형적으로도 드러난다. 지난해 하나대투증권 전국 영업점 가운데 고객 자산 1위를 차지한 청담금융센터지점은 와인바, 게임룸 등을 만들었다.
우리투자증권의 강남파이낸스센터 PB센터에선 예술투자 컨설팅을 특화시켰다. 지점을 아트갤러리처럼 꾸며 상담실에서도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미술업계와 연계해 예술품 분석과 보험, 보관, 절세 컨설팅도 제공한다.
대형증권사 PB센터 관계자는 “프로 골프 선수의 일대일 레슨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고액 금융자산가들을 잡기 위한 증권사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며 “증권사 능력이 비슷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서비스 경쟁에 더 집중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경닷컴 이지현·강지연 기자 edi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