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D-336일…규제 괴물이 온다

입력 2014-01-28 20:31
수정 2014-01-29 05:08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새해 들어 대통령이 기회만 되면 규제총량제를 강조한다. 규제가 더 안 늘어도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글쎄’다. 겨우 시작인데 삐딱한 기자의 야박한 소리일까. 역대 정권마다 규제가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선 없앴지만 뒤에선 더 큰 규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규제를 줄이려면 불필요한 신설을 금하고, 낡고 썩은 것은 솎아내면 된다. 참 쉬워 보인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다.

규제 건수는 작년 말 1만5269건이다. 현 정부에서 380건 늘었다. 하지만 건수는 무의미하다. 분류하기에 따라 규제 1건이 10건도 되고, 10건이 1건이 되기도 한다. 핵심은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 규제와 새로 만들어지는 규제의 강도 및 속도에 달렸다. 그런 점에서 336일 뒤인 내년 1월1일에 쏟아질 규제폭탄들은 모든 노력을 공염불로 만들기 충분하다. 논쟁거리였던 규제들이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환경 6종세트로도 기업들 패닉

그 선봉에 환경부가 있다. 작년부터 쏟아낸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 저탄소차협력금 제도, 탄소배출권거래제 등 광폭 규제들이 모두 내년 1월 시행이다. 환구법(환경오염피해구제법), 환통법(환경오염 통합관리법)도 예정돼 있다. 경제민주화와 국민안전 공약에 편승해 숙원사업을 죄다 관철하려는 인상마저 준다. “기업들의 우려를 수용해 상당부분 완화했다”는 조삼모사식 해명이 더 어이없다. 잔챙이 규제를 아무리 없애도, 환경규제 6종 세트만으로 기업들은 패닉 상태다.

국회 환노위는 한술 더 뜬다. ‘국회 최루탄’ 주역 김선동 의원은 이름도 살벌한 ‘기업살인처벌법’을 작년 말 발의했다. 산재사고를 기업살인으로 규정, CEO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심상정 의원은 사망재해시 사업주를 3년 이상 징역형에 처하는 ‘산업안전보건범죄단속 및 가중처벌법’을 내놨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근로자들이 죽기를 바라겠는가. 산업현장의 과실 치사를 살인죄로 엄벌하면 산재가 근절될까. 업무상 과실은 형법에선 5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인데 유독 산업안전보건법은 7년 이하 징역, 1억원 이하 벌금이다.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경우 버틸 기업이 몇이나 될지도 의문이다. 비교적 낫다는 상장사의 영업이익률이 고작 5.6%다. 이건 규제를 넘어 ‘기업활동금지법’ 수준이다.

기업활동 빙하기가 막 오른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기업들에 발등의 불은 이뿐이 아니다. 올해 통상임금 협상부터 험로이고, 2016년 시행될 정년 연장(300인 이상)은 대책이 막막하다. 갑을 관계법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대비할 틈도 없이 거대 괴물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느낌”이라는 기업인들의 하소연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대기업 때리기가 정치인에게 가장 안전하고 남는 장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틈에 죽어나는 것은 중소기업들이다. 정년 연장을 찬성해온 모 언론사조차 당분간 채용 보류에, 사표는 즉각 수리라고 한다. 300명 남짓한 직원 수를 줄여 정년 연장을 1년이라도 늦춰보려는 속내다.

명분 없는 규제는 없다. 산재를 예방하고, 저탄소차를 권장하고, 과도한 근로를 줄이고…. 하나하나 금과옥조인데 모아 놓으니 대재앙이다. 김태희 눈, 이영애 코, 고소영 입술을 합친다고 미인이 될까. 거기에 타이슨의 핵주먹까지 달았으니.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