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비타, 천연화장품의 성공 확신·꾸준한 신제품 개발…불황에도 '승승장구'

입력 2014-01-10 06:58
수정 2014-05-16 17:33
Best Practice - 천연화장품 전문업체 아피비타

약사 부부가 1972년 창업
프로폴리스·허브로 비누 개발…'플래그십 스토어' 전략 성공

해외시장 적극 공략
아몬드 등 100여종 재료 개발…R&D센터 확대·인력 투자
14국 진출…시장 점유율 13%

불경기에도 고객 몰려
그리스서 재료조달 '애국경영'…연간 매출규모 2600만유로


[ 남윤선 기자 ]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위기의 시발점이었던 그리스는 여전히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6년 연속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국내총생산(GDP)은 약 4분의 1이나 줄었다.

국가 경제 전반이 ‘사망 직전’이라는 비관적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리스지만, 그 가운데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기업이 있다. 천연 화장품 전문업체 아피비타다.

비상장 기업이라 실적을 정확히 공개하진 않지만 외신 보도와 회사 웹페이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꾸준히 매년 2600만유로 규모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천연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2005년 5%대에서 2011년 약 13%로 두 배 이상 뛰어올랐다.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국가는 물론 멀리 일본에서도 화학품이 섞인 화장품 사용을 꺼리는 여성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약사 부부인 니코스, 니키 코우시아나가 1979년 창업한 아피비타의 성공 비결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과 꾸준한 신제품 개발, 적극적인 시장 공략으로 요약된다.

○제품에 대한 확고한 의지

니코스는 벌 양봉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자 약사였다. 어려서부터 프로폴리스(꿀벌이 식물에서 뽑아낸 성분들에 자신의 침과 효소를 섞어 만든 물질로 미네랄 비타민 아미노산 등이 포함돼 있어 영양제로도 많이 쓰인다)를 먹고 자라며 효능을 실감했다. 약사가 된 뒤 “이걸로 미용 용품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니코스는 프로폴리스와 허브를 섞어 비누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중에 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상인보다는 연구자에 가까웠던 성격 탓이었다.

1972년 그의 약국에 인턴으로 들어온 아테네 의대 학생 니키의 생각은 달랐다. 비누를 써 보자마자 “팔리겠다”는 직감이 왔다. 좋은 제품을 만든 니코스와 사랑도 싹텄다. 결국 둘은 부부가 됐고 1979년 회사를 세웠다.

니키는 결혼 후 약사 일을 중단하고 영업사원으로 변신했다. 약국을 돌아다니며 남편이 개발한 비누와 미용용품을 홍보했다. 반응은 싸늘했다. 당시 그리스 젊은 층에선 값비싼 수입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피비타라는 브랜드나 천연 화장품이라는 개념 모두가 생소했다. 문전박대가 이어졌다. 니키는 “젊은 여성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남편이 개발한 제품에 대한 신뢰가 깊었다. 스스로도 여성 소비자로서 제품 성능에 확신이 있었다. 계속해서 아테네에 있는 약국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조금씩 매출이 늘어났고, 10여년이 지난 1990년대가 되자 그리스 내에서 적어도 아피비타의 이름을 모르는 소비자는 없게 됐다.


○해외 시장 개척

그리스 내에서 자리를 잡자 니키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제품이 좋다면 더 큰 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그리스 국내에서 해외 명품 화장품들과 격전을 치른 뒤에는 브랜드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니키의 전략은 ‘플래그십 매장’이었다. 2003년 그리스보다 훨씬 국가 규모가 큰 스페인 마드리드 한가운데 브랜드 단독 매장을 세웠다. 소기업이었던 아피비타로선 파격적 투자였다. 전략은 적중했다. 스페인 소비자들은 그리스보다 더 자연스럽게 아피비타라는 브랜드를 받아들였다.

판매량이 늘자 이번엔 생산 시설이 발목을 잡았다. 가내수공업 형식으론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는 단계에 온 것. 다시 한번 니키의 의지가 빛났다. 그는 다른 화장품 공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장비와 장소를 빌려 화장품을 만들었다. 동시에 적극적인 해외 공략도 계속했다. 키프로스 등 이웃 국가는 물론 홍콩, 일본 등 아시아 시장도 적극 공략했다.

그리스 인근에 아피비타의 공장을 마련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은 세계 14개국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아내가 열심히 물건을 팔 동안 남편 니코스는 특유의 연구자 정신을 발휘해 벌꿀과 허브 이외의 다양한 화장품 재료를 개발해냈다. 현재 아피비타가 화장품 생산에 활용하는 천연재료는 아몬드, 백리향, 포도, 당근 등 100여종에 이른다.

니코스는 아테네에 연구개발(R&D)센터를 세워 제품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니코스는 “우리 부부는 철학을 공유하는 대신 역할은 철저히 나눴다”고 설명했다. 아피비타는 전체 근로자 중 76%가 대졸 이상, 23%가 화장품 관련 전공자다. 18%가 석사 이상일 정도로 인력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테네 도심에 있는 아피비타 단독 매장에는 경기 불황에도 최근 고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한다. 그리스 내에서 ‘반(反) 독일’ 정서가 강해지면서 시민들이 오히려 자국 브랜드를 찾고 있는 것. 아피비타는 그리스 내에 허브 등 각종 원자재를 생산하는 밭을 마련하고, 상당 부분의 재료를 자국 기업에서 사들이는 등 ‘애국 경영’에도 힘써왔다.

영국 BBC방송은 “아피비타는 역설적으로 위기의 수혜자가 되고 있다”며 “1980년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브랜드를 정립한 아피비타의 정신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