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퍼트롤]투자자를 위한 녹취록은 없다

입력 2013-11-15 11:17
[ 김다운 기자 ]
"동양증권 직원에게 투자설명서에 써 있는 '투자부적격 등급'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냥 의례적으로 써 있는 거예요. 설마 동양그룹이 망하겠어요?' 라고 하더군요."

지난 14일 서울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동양그룹 피해 투자자 대상 설명회를 찾은 주부 김모씨(60)는 지난해 10월 동양그룹 회사채에 투자했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원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했다. 동양증권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있는 자금을 동양그룹 회사채로 옮기면 안전하게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을 믿었기 때문.

투자설명서에서 '투기 등급'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의 불안한 문구를 발견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직원은 그때마다 '안전한 상품'이라며 김씨를 안심시켰다.

그는 "그렇게 거짓말을 해놓고 이제와서 '투자설명서에 사인했으니 불완전판매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느냐"며 "나같이 당한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원회가 녹취록 공개를 결정하면서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피해 투자자들에게 녹취록을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투자자들이 이 녹취록만 갖고 불완전 판매를 확실하게 입증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동양증권이 증권사 회선 전화를 통한 상담만 녹취했기 때문에 영업지점 내방을 통한 직접 상담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투자자가 직접 투자설명서에 사인했다면 위험 가능성과 상품 설명을 충분히 들었다는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녹취록을 분석해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면서도 "개별 건수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투자설명서에 사인을 한 경우 과거 법원 판례는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투자자가 직접 증권사 상담 내용을 녹취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에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동양증권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증권사들이 전화 상담이나 계약의 경우 녹취를 하고 있지만, 내방 고객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가 상담 내용을 녹음한다고 하면 영업지점이나 상담직원 성향에 따라 허용 여부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직원은 "문제 생길 만한 상품을 억지로 판매하려는 게 아니라면 녹취를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거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증권사 직원도 있었다.

실제 내방 상담 내용을 녹취하려다 증권사에 뺏긴 사례도 있다.

지난해 말 증권사 미스터리 쇼핑 조사원인 박모씨는 S증권에서 상품 가입 상담을 받으면서 상담 내용을 녹음기에 녹취했다. 하지만 박씨가 녹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증권사 직원이 녹취 내용을 지울 것을 요구했고, 박씨는 자신이 미스터리 쇼퍼라는 사실을 증명한 이후에야 실랑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가 직접 상담내용을 녹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며 "불완전판매를 입증하는 녹취 내용이 있으면 유리할테지만 실제 그런 자료를 갖고 있는 투자자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로서는 잘 모르는 상품에 대해서는 더 설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충분히 이해가 된 뒤 투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전했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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