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자교육

입력 2013-07-03 17:43
수정 2013-07-03 21:14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이승만 대통령의 한글 사랑은 대단했다. 배재학당에서 한글 연구를 하고 독립신문에서 주시경과 함께 한글 운동을 펼쳤다. 조선 양반계층을 싫어했던 이승만은 “국문(한글)이 나라를 문명(文明)할 근본”이라고 여러 차례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이승만의 생각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적극 반영됐다. 모든 공문서를 한글로 적게 하는 한글전용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은 50년대 들어 유야무야됐다. ‘얼마 동안 필요할 때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전제조항이 있었다. 실제로 50년대 각급 학교에선 법과 무관하게 한자를 가르쳤다.

박정희 대통령은 애초 한글 전용을 주장했지만 한자는 대부분 쓰였다. 그러다 1969년 한자교육을 완전히 폐지하도록 지시한다. 1972년 들어 어문정책은 또 한 차례 뒤바뀐다. 한자 교육이 다시 부활되고 교육용 한자 1800자가 제정됐다. 1974년 이후로는 국어 교과서에 한자 병용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그 뒤 한글 전용과 한자 병용 논쟁이 여러 차례 거듭됐지만 차츰 한자는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런 들쭉날쭉 언어정책으로 인해 세대 간 한자 이해가 완전히 다르다. 특히 60대 초 세대들은 한자를 제대로 교육받지 않아 사회생활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게 현실이다. 30대 이하의 한자 능력도 많이 떨어진다. 결재와 결제를 구분하지 못하고 유 산부인과(柳 産婦人科)를 유산(流産) 부인과(婦人科)로 오인하는 소동도 벌어진다. 의의라는 한자어는 뜻이 20개가 있어 한자를 모르면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다. 선택사양이라는 일본말이 한자어인 양 쓰이기도 한다.

서울시 교육청이 방과후 수업 등 학교 자율의 방법으로 한자교육을 시키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은 국어 교육을 망치는 일이라며 당장 그만둘 것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10군데가 넘는 기관에서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치르고 있다. 등급만 10개 이상이다. 1000자 정도 알면 3급 정도 되고 2000자를 알면 1급이다. 특1급, 특2급도 있다. 기업에 따라 신입사원 채용 시 한자능력검정시험 급수를 인정하는 곳도 있다. 수요가 있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수요는 소비자인 국민들이 한자를 배워야 우리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필요성을 느낀다는 데서 출발한다. 한자사용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15억명에 이른다. 사용 언어의 인구수만 따지면 영어보다 많다. 무엇보다 우리말의 75%가 한자에서 유래했다. 한자가 우리말의 보완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보완재가 풍부하면 우리말을 더욱 살찌우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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