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부터 갚아라"…사채행복기금? 우려

입력 2013-05-26 17:13
수정 2013-05-26 23:42
인사이드 Story - 시행 한 달 '국민행복기금'의 그림자

"이제 살 만 하니까" 빚 독촉 더 심해져
일부러 3개월 더 연체…신용회복위 다시 찾아
행복기금서 탈락하도록 일부 대부업체 꼼수도


#1. 가게를 열었다가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김모씨는 최근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은행 빚 1500만원 중 절반을 감면받았다. 나머지도 5년간 조금씩 나눠 갚기로 했다. 하지만 그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사채업자의 독촉을 받고 있어서다. 급전 1000만원을 빌려준 사채업자가 행복기금과 협약을 맺지 않은 탓이다. 김씨는 “은행 빚을 갚았으니 이제 좀 살 만하냐, 이제 우리 쪽에 진 빚을 갚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독촉이 끊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2. 최근 행복기금 상담을 맡고 있는 서민금융콜센터에는 “행복기금 대상인데 혜택을 못 받아 너무나 억울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중년 여성 이모씨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린 뒤 1년가량 연체했는데 지난 1~2월에 평소와 달리 ‘이달엔 2만원만 갚으면 된다’고 해서 갚았더니 연체자가 아닌게 돼 버렸다”며 “행복기금 대상자에서 탈락하도록 업체가 꼼수를 쓴 건데, 어떻게 구제받을 방법이 없느냐”고 하소연했다.

논란 속에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이 한 달을 맞았다. 정부는 지난달 22일 행복기금 채무조정 가접수를 시작했다. 지난 21일까지 한 달간 총 11만4312건이 접수됐고 8981명에 대한 채무조정이 완료됐다. 채무조정을 마친 사람 중 거의 대부분(91.3%)이 연소득 2000만원에 못 미치는 서민이었고 평균 연체기간은 5.7년이었다.

성과도 있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다.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든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행복기금 대상은 처음엔 일반 채무자였는데 최근 연대보증 채무자로 범위가 넓어졌다. 최근엔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서도 최고 70%까지 빚을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했다. 이런저런 ‘빚 깎아주기’ 정책의 수혜자를 다 합하면 100만명가량이 혜택을 본다는 추산도 나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빚을 일부러 연체한 뒤 혜택을 기대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원래 3개월 정도 빚이 연체된 사람이 지금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원금 감면이 안 된다고 안내하자 일부러 3개월가량 더 연체를 해서 원금 50% 감면 조건(금융사의 채권 상각)을 맞춘 다음 다시 신복위를 찾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성실상환자들의 박탈감도 적지 않다.

행복기금이 사채업자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채무조정 뒤 빚 독촉이 오히려 심해진 김씨 경우가 대표적이다. 금융감독 당국 관계자는 “불법 대부업체들은 협약에 가입하지도 않고 채권을 팔지도 않기 때문에, 단속을 강화해서 채무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외엔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채권추심업체는 채무자의 현재 상황을 훤히 알고 있는 점을 악용한다. 원금과 이자를 다 받아낼 수 있을 듯한 사람은 채무조정 신청을 못하게 하고 어차피 못 갚을 것 같은 채무자의 채권만 행복기금에 넘기는 식이다.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허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행복기금 관계자는 “채무자의 연체채권을 담보로 채권추심업체가 다른 곳에서 돈을 빌린 경우에는 담보권이 설정돼 채무자의 뜻과 상관없이 채무조정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연체 채권이 여러 차례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바람에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어서’ 채무조정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아 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채권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무한도우미 태스크포스(TF)’를 최근 발족하기도 했다.

이상은/김일규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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