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로 술·담배·도박 끊는다

입력 2013-03-08 17:12
수정 2013-03-09 09:20
대인공포·자폐·치매·뇌졸중까지 치료…약물치료 부작용 환자도 효과

고소공포 환자 7주간 가상 체험…20명 전원 75층까지 올라
강남세브란스 보라매등 3곳서 '클리닉' 운영



환자를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병을 치료하는 ‘가상현실 치료’가 확대되고 있다. 그동안 주로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정신질환 치료에 활용됐으나 최근 들어 음주 금연 도박·게임중독 재활 치료로 적용 대상이 늘고 있다.

○상황은 가상, 치료는 현실

“대형 화면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술을 너무 마시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가상현실이라 마실 수 없었습니다. 미치도록 괴로웠습니다. 그런 상태가 몇 분간 지속되니 괴로움이 서서히 가시기 시작했습니다.”(알코올중독 환자 서모씨)

지난 7일 서울 도곡동에 있는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서모씨(54)가 전투기 조종사들이 쓰는 헬멧처럼 생긴 장비(HMD·Head Mounted Display)를 착용한 채 우두커니 방 한가운데 서 있다. 약간 긴장한 듯 눈앞에 비치는 가상현실 장면 속으로 들어갔던 서씨는 10여분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매주 한 번씩 이 병원의 가상현실클리닉 ‘음주거절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상현실클리닉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음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약물치료나 상담치료가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면서 “음주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거나 거절이 어려워 과도한 음주를 계속하는 음주 고위험군의 경우 이처럼 상황에 따른 대처요령과 반복훈련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평소 생활환경과 비슷한 가상현실 상황을 체험하면서 음주를 적절하게 거절하거나 음주를 유발하는 각종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가상현실클리닉 치료비는 회당 5만원이다.

이뿐 아니다. 가상현실클리닉은 음주뿐 아니라 금연 치료에도 적용된다.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병원에선 흡연 환자들을 위한 금연 가상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스크린에 담배 연기가 자욱한 술집을 설정, 주변에서 맥주를 마시던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몇 번 참아보지만 유혹은 계속된다. 스크린에서 말이 흘러나온다. “진짜 안 피울 거야? 우리끼리 있으니까 괜찮아. 마누라 없을 때 몰래 피워~.” 가상현실 금연치료 프로그램은 이런 상황에서 흡연을 절제하는 법을 훈련시킨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모씨(38)는 “처음에는 가짜 같은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상황에 빠져들었고 나중에는 현실감이 났다”며 “상황이 반복되니까 신기하게도 조금씩 욕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하루에 반 갑 이상 피웠는데 지금은 하루에 5개비 정도로 (흡연량을) 줄였다”고 말했다.

최정석 보라매병원 중독센터장은 “금연 성공률이 4주 후 70%, 6개월 후에는 40% 정도 된다”며 “기존의 약물치료에 부작용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보라매병원에 따르면 최근 환자가 늘고 있는 금연 가상치료는 1주일에 1회씩 총 4회로 진행된다. 또 도박중독 가상치료는 1주일에 1회씩 총 6회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1회 치료를 받는 데는 40~50분 정도 걸린다. 가상치료에 따른 치료비는 회당 5만원 정도다.

○반복적으로 상황별 대처요령 습득

가상현실 치료는 환자가 두려워하는 상황을 가상현실로 설정해 이뤄진다. 예컨대 알코올중독 환자는 회식이나 술자리에 있도록 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발되는 알코올에 대한 갈망 정도를 평가한다. 술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 가장 강해지는지 확인하면서 위험상황에 노출될 때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훈련시킨다. 이런 훈련을 반복, 실제 생활에서 겪게 되는 재발 위험 상황을 극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고소공포증 환자는 높은 투명 엘리베이터 안에 있도록 하고, 멀미가 심한

사람은 움직임이 심한 자동차에 몇 분간 있게 한다. 뇌졸중 환자들은 가상현실을 통해 수영 축구 스키 보행 등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의 운동을 선택, 팔과 몸통을 움직이면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의사는 환자가 치료를 받는 동안 환자의 몸에 연결된 센서를 통해 1000분의 1초 단위로 기록되는 환자의 맥박과 호흡을 볼 수 있다. 이 수치를 본 뒤 중증도를 파악, 환자의 상태별로 가상현실을 다르게 설정한다. 환자가 치료 중 참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면 버튼을 눌러 의사에게 알리도록 돼 있다.

현재 의학계에서 가상현실 치료법은 매우 흥미로운 분야다. 약물이나 상담치료 이상의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최근 미국 에머리대 바버라 로스바움 교

가 20명의 고소공포증 환자를 대상으로 주 1회 35~45분씩 7주간 가상현실 치료를 실시한 결과, 모든 환자가 75층 높이의 건물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약물치료 부작용 환자에게도 효과

현재 가상현실 치료의 주요 대상은 알코올중독·장기간 흡연을 비롯해 게임·도박중독, 고소·대인·비행·폐쇄공포증, 자폐증, 강박증, 정신분열증, 불안증, 치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풍이나 뇌졸중 등 광범위하다. 앞으로는 바퀴벌레나 거미 공포증, 거식증 등도 치료 대상이 될 예정이다.

이 같은 효용성에도 불구, 국내에서 가상현실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경기 광주시에 있는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대 보라매병원 등 3곳뿐이다. 다양한 종류의 가상현실 치료 프로그램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상현실 치료의 미래는 밝다. 전문가들은 10년 안에 환자가 자기 집에서 컴퓨터나 텔레비전을 이용해 가상현실 치료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정신치료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의 정신과 치료에서 가상현실 치료법이 주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김재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최정석 보라매병원 중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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