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샌프란의 안개주의보, 그리고 AI주의보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권영전 특파원 =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 (…) 지난 겨울엔 /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안개의 도시다.
햇볕에 육지가 달아오르면 태평양의 찬 공기가 오렌지색 금문교를 넘어 진주해 들어온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면 대교의 하단은 흰 장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끼려나 보다 하는 것도 잠시, 도시는 어느새 소리 없이 다가온 안개에 젖어 있다.
작가 김승옥이 무진의 '명산물'을 안개라고 했듯, 샌프란시스코의 명산물 역시 안개다.
이 안개에는 '칼'(Kar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팀 버튼 감독의 2003년 영화 '빅 피시'에 나오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모두에게 괴물 취급을 받지만 실제론 온순하고 순박한 거인의 이름을 땄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도시가 안개에 덮이면 "칼이 왔구나" 하고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고, 지역 연고 프로야구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오라클파크로 안개가 밀려 들어오면 "좌익수 자리에 칼이 나왔다"고 표현하곤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의 '칼 더 포그'(Karl the Fog) 계정은 위트를 담아 샌프란시스코의 짙은 안개를 소개하거나 그에 대해 주의를 당부하는 글로 화제가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명산물은 또 있다.
몇 해 전 '신기한 게 생겼네' 했던 것도 잠시, 어느새 소리 없이 모두의 일상 속으로 밀고 들어온 인공지능(AI)이다.
챗GPT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오픈AI와 곧 기업공개(IPO)까지 앞둔 앤트로픽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두고 있다. 경쟁사 구글도 가까운 실리콘밸리에 있다.
AI 개발의 장본인들인 이들은 언젠가부터 AI가 촉발하는 위험을 경고하며 더 많은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성능이 개선된 새 모델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도, 위험한 도구이니 얼른 개발 속도를 조절하고 발전을 늦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시나브로 AI에 익은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다.
마이크로소프트(MS) 의뢰로 갤럽이 진행한 지난 9월 설문조사에서 AI 활용도가 높은 서구 고소득 국가일수록 AI를 더 두려워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특히 AI를 매일 사용한다고 답한 미국인 가운데 AI가 우려스럽다고 답변한 비율은 68%나 됐다.
시인 기형도가 시 '안개'에서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고 읊은 것처럼 이제 우리는 누구나 AI를 두려워하면서도 얼마씩은 AI에 기대어 산다.
앤트로픽이 상장을 완료하면 '안개의 주식'은 문자 그대로 거래소에까지 오르게 된다.
시 '안개'의 화자라면 "사소한 사건"이자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했겠지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일도 AI 영역에서 반복되고 있다.
AI와 대화하다가 정신 장애를 얻어 고통 속에 세상을 떠난 청소년들이 있었고, 살인이나 테러를 AI와 모의한 사례도 여럿 드러났다.
안개가 짙어지면 금문교에서는 이를 경고하는 무적(霧笛·Foghorn)이 낮고 굵게 운다.
다리 아래를 지나는 선박은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교각 사이를 사고 없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AI가 가져온 개인적 파멸을 먼저 겪은 가족들도 때로는 소리 지르며, 때로는 숨죽이며, 흐느껴 울고 있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속의 우리도 어쩌면 그들이 울리는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 뱃머리를 돌려야 무사히 나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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