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 "트럼프의 패인은 트럼프"…'마가'의 부메랑에 지지층 와해

입력 2026-11-05 02:52
[美중간선거] "트럼프의 패인은 트럼프"…'마가'의 부메랑에 지지층 와해

'내가 투표용지에 있다' 47차례 강조…트럼프 찬반 투표로 만들어

극단적 정책, 공화당 종속화, 보수 외연축소, 메시지 실패로 예고된 참사

재선 동력된 '선거연합' 해체됐나…"트럼피즘 끝났다" "과거론 못돌아가"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중순 한 측근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궤멸 위기에 빠진 공화당을 건져내려는 지원유세로 동분서주하던 도중의 대화였다고 CNN이 4일(현지시간) 전했다.

이번 중간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이라기보다는 '트럼프의 참패'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가 여전히 높지만, 유권자들은 반(反)트럼프 투표에 팔을 걷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기간 "내가 투표용지에 올라 있다고 생각해 달라"는 호소를 47차례 반복했다. 유권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만, 그가 바라던 방식으로는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그토록 짧은 기간에 그토록 많은 정치적 지지를 잃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공화당 인사들과 전문가들의 진단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참사"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10년간 체질을 바꿔놓은 공화당과 그를 재선 반열에 올려놓은 지지층이 '이란전쟁과 고유가'라는 대형 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이다.

비극의 징조는 올해 초 미네소타주에서 두 미국 시민이 이민단속 요원의 총에 맞아 숨졌을 때부터 나타났다고 공화당 여론조사 전문가 그레그 스트림플은 지적했다. 그는 "그 사건은 트럼프가 일부 정책 의제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WSJ에 말했다.

강경한 이민 단속과 다양성·포용성에 대한 공격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자 그의 정치적 동력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이 열광하는 소재다. 미네소타의 연쇄 총격은 이를 핏빛으로 그린 사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해 온 관세 정책과 동맹 관계 재설정도 공화당의 전통적 지향점과는 다른 마가 진영의 의제다. 극단으로 치달은 일방주의적 정책 결정이 이란 전쟁으로 이어졌고,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층도 감당할 수 없는 휘발유 가격으로 돌아왔다.

여론조사기관 SSRS가 중간선거 유권자 7만5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하원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트럼프의 관세가 경제에 해를 끼쳤다고 답했으며, 약 4분의 1은 그의 전반적인 정책이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답했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할 정도로 무력해져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가의 충성스러운 '홍위병'과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당을 종속화한 결과였다. 공화당 후보들은 패색이 짙어진 선거에서조차 트럼프 대통령과 얼마나 거리를 둬야 할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후보는 '이제껏 트럼프를 옹호하고 정당화해오다 이제 와서 그를 버린들 무슨 소용인가'라는 패배감에, 일부 후보는 '마가 핵심 지지층의 표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또 일부 후보는 '트럼프의 분노를 사는 것보다 그의 열성적 지지층에 호소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이런 모습을 보였다고 CNN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정의한 공화당은 그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들을 쫓아냄으로써 당의 외연을 축소시켰다고 톰 래스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은 분석했다. 이같은 외연 축소는 민주당 후보가 상대적으로 응집력을 보인 주요 경합지 선거에서 뼈아픈 패배로 직결됐다.

SSRS 출구조사에에 따르면 텍사스주 상원선거에 투표한 민주당원 중 99%가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를 지지한 반면, 켄 팩스턴 후보를 지지한 공화당원은 88%에 그쳤다. 오하이오주 상원선거에서도 민주당원의 97%가 셰러드 브라운 후보를 지지한 반면, 공화당원의 90%만 존 허스테드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자신의 직전 상원의원 지역구가 오하이오인 JD 밴스 부통령조차 이날 엑스(X)에서 "우리 유권자들이 실제로 투표소에 (많이) 나왔다"면서도 "주된 문제는 2024년에 트럼프·밴스에게 투표했던 많은 사람들이 2026년에는 민주당에 투표했다는 것"이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래스 전 위원은 "공화당이 성공하려면 중도 성향 당원들도 함께해야 한다. 그런데 6년 또는 8년 동안 공개적으로 '우리는 당신들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며 "지금 공화당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성 지지층에 둘러싸인 트럼프 대통령은 오판을 거듭했다. 텍사스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상원선거 패배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된 후보 낙점이 빚어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애리조나주의 공화당 전략가 배럿 마슨은 "솔직히 말해서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고 말했다.

메시지 실수도 잦았는데, 대표적인 게 생활비 부담 이슈를 '민주당의 사기극'으로 몰아간 주장이었으며, 이를 수습하려는 주위의 노력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발언을 반복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정치 참모가 털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운동 마지막 공개 일정을 워싱턴 DC의 '반사 연못' 앞으로 잡은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점으로 지목됐다. 그는 유세 연설 때도 백악관 연회장을 비롯한 건축물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놓곤 했다. 그의 입장에선 정치적 유산이겠지만 유권자들에겐 그저 '돈과 시간 낭비'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NYT는 "마치 리처드 닉슨이 선거 전 마지막 연설을 워터게이트 건물 앞에서 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며 "그의 정치적 감각이 당시 상황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짚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이 하원선거 총득표율에서 민주당에 13%포인트(p)나 뒤지는 기록적 참패를 스스로 써 내려간 셈이 됐다. 이는 1976년 이후 공화·민주 양당이 연방의회 선거에서 기록한 가장 큰 격차라고 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동력이었으나 이제는 '부메랑'처럼 돌아온 마가 중심의 선거연합은 이번 선거 패배를 계기로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당내에서조차 "이제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은 끝났다"는 진단이 나온다.

마가의 영향력이 훼손됐지만 여전히 건재하며, 트럼프 시대의 달라진 공화당을 조지 W. 부시 시절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제임스 블랜처드 전 미시간 주지사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며 미국 정치가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모습을 복원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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