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정부는 전쟁 원하나"…독일 'Z세대 집회' 반전 목소리
프랑스 들끓자 34곳 청년 시위…"국방비 늘리려 복지·교육 예산 삭감"
징병제 부활 예고, 재무장에 불만 커져…반극우·반파시즘 단체 연대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31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서쪽 '3월18일 광장'이 관광객 대신 팻말과 현수막으로 가득 찼다. 젠지레겔트(Z세대가 해결한다)라는 이름의 청년 단체가 조직한 집회에 경찰 추산 5천명이 모였다.
Z세대 집회를 내걸었지만 학생·청년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온 중장년층도 많았다. 노년층으로 구성된 '극우에 반대하는 할머니들'(Omas gegen Rechts)부터 소규모 정당 시민권운동연대(BuSo)까지 수십개 단체가 깃발을 들고 나왔다.
반파시즘 단체 안티파(ANTIFA)는 '미사일은 억만장자를 날려버리는 데만 필요하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안티파는 대표 구호 '우리 모두 반파시스트'를 '우리 모두 반자본주의자'로 바꿔 외쳤다. 옆나라 프랑스에서 한 달 넘게 시위가 벌어지면서 '프랑스처럼 투쟁'이라는 현수막도 등장했다. 대학생들은 '대학에 더 많은 빗물받이를'이라는 구호로 교육예산 증액을 요구했다.
'메르츠 물러나라'라고 적은 대형 현수막이 한가운데 자리했고 비속어를 섞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를 조롱하는 팻말도 여럿이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나랏빚을 대폭 늘려가며 국방비를 증액하고 사회복지·교육 예산은 줄여 청년 세대에 부채를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청년층의 가장 큰 불만은 징병제 부활이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병역법을 바꿔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의회 승인을 받아 강제 징집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집어넣었다. 18세 청년에게는 징집을 염두에 두고 입대 의사를 묻는 설문과 신체검사를 의무화했다. 청년들은 독일이 러시아의 위협을 핑계 삼아 군사국가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징병검사 너희나 받아라'라는 팻말을 들었다.
대학생 팀(23)은 사회복지·교육 예산을 줄이는 게 결국 군비 증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징병제 반대' 팻말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던 그는 "국방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면서 많은 사회복지 제도가 사라지고 있다"며 "부족한 세금은 초부유층에게서 걷어 복지와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권운동연대의 요나탄(40)은 독일의 재무장이 오히려 러시아를 도발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방위 조직을 꾸리는 게 이상적이다. 하지만 징병제 재도입 움직임은 서방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맥락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몹시 위험하고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연방군은 학교에서 나가라'라는 팻말도 눈에 띄었다. 독일군은 부족한 병력을 채우기 위해 고등학교에까지 군인을 보내 입대를 독려하고 있다. 이는 군축과 평화를 내세우는 좌파 진영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고교생들은 지난해부터 정기적으로 하루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거리에 나가 징병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16살 고등학생 야니크는 브란덴부르크문 바로 앞에서 내달 20일 학교 파업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들고 서 있었다.
2년 뒤 징병검사를 받아야 하는 그는 "정부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신체검사도 할 필요가 없다. 전쟁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곳이지 연방군 광고판이 아니잖느냐"며 "좋은 정치인이 너무 적어 시위에 나서야 한다. 작은 변화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좌파 반정부 세력이 고교생들에게 의무복무 반대 집회를 부추긴다고 주장해왔다. 당국은 프랑스에서 폭력·약탈 사태까지 벌어지자 이날 34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리는 집회를 앞두고 극단주의 세력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연일 경고했다.
젠지레겔트는 이날 오후까지 전국에서 모두 18만4천여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고 집계했다. 경찰은 프랑크푸르트 8천명, 베를린 5천명, 뮌헨 4천명 등 주최 측 예상 인원의 절반 정도가 참가한 걸로 추산했다.
주최 측은 시위를 평화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해가 진 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함부르크 등 곳곳에서 경찰이 시위대와 충돌하며 물대포와 최루가스를 쏘고 집회를 강제로 해산했다. 전국 학생 대표 모임인 연방학생회의(BSK)는 폭력·극단주의와 명확히 선을 긋겠다면서 내달 20일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또 다른 시위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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